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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적응해버리고 말 거라면

어디에 적응하고 싶은가요?

by 윤지아

며칠 전 에어팟이 고장 났다. 한쪽이 지지직 저리더니 이젠 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급하게 줄이어폰을 사서 썼다.

처음에는 줄이어폰을 끼고 있는 내가 이상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한 번 두 번 써보니 따로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 더 써볼까 했던 게 겨우 며칠 썼다고 적응해 버린 나를 발견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글 하나 적는 데에도 몇 번을 수정하고 수정했다.

두 권의 브런치북을 발행한 후 다시 글을 적게 될 때면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매일같이 글을 쓰다 보니 이제는 글 쓰는 데에 부담이 적어졌다.

얼른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때는 쓰기 부담스럽다고 끙끙대기 일쑤였는데 말이다.


결혼을 하고 살 집을 구하며 동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살던 동네보다 더 좋은 동네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몇 년간의 그곳에서 쌓인 추억을 버리는 것 같고 익숙해진 거리와 상점들을 떠나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새 출발을 위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살던 동네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더 많은 편의와 새로운 풍경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첫 직장에서는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일을 했다.

당시 내가 속한 팀의 동료들은 대부분 이렇게 일을 했는데, 그런 업무 생활이 어느샌가 우리에겐 당연한 게 되어있었다. 정시 퇴근을 하게 되는 날이면 "오늘 무슨 날이에요?"라고 할 정도로 신기해했다.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매일매일 살아가는 현실이 그랬으니까 상황에 무뎌져갔던 것이다.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는 물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매 순간 적응하다가 끝내 자신을 잃어버렸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최근 경험까지 쌓이면서 어차피 사람은 적응을 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이로운 상황이든 최악의 상황이든 말이다.


끝내 내가 놓인 상황에 적응해버리고 말 거 라면, 나는 어디에 적응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적응하고 싶은지를 알지 못하면, 오히려 나를 퇴보하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는 듯이 적응해버리고 말 것이다.

깨달은 후 뒤돌아봤을 땐 이미 먼 길을 와서 돌아가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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