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가보자 치료법 (1) 숨 고르기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는 정신과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밖으로 나간다.
목적지를 정해두고 나가는 날은 거의 없다. 주로 나가서 기분 내키는 대로,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멈추는 편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주로 한강이나 카페에 간다.
한강으로 나가는 날에는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렸다가 걷기를 반복한다.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최고 속력으로만 달릴 수는 없다. 그렇게 달리기만 하면 이내 곧 쓰러지겠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에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라야 한다.
숨이 찰 때에는 누군가 쉬어야 할 타이밍을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숨을 고른다.
내게 우울증이 온 것은 지금이 한숨 돌릴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숨이 차도 참고 참으며 버텨와서 숨이 차오를 대로 차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숨을 쉬어야 할 타이밍인 것이다. 숨을 쉴 수밖에 없는 타이밍, 쉬지 않으면 안 되는 타이밍.
재수 없게 지금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라 언젠간 왔어야 할 순간이 지금 온 것뿐이다.
카페에 가는 날이면 읽고 싶었던 책을 챙겨가기도 노트북을 들고나가기도 한다.
가끔은 밖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행복해 보여서 흐뭇하다. 흐뭇해하면서도 금세 우울해지곤 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머릿속으로는 나이, 직업,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끝없이 나를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교는 오프라인이고 온라인이고 가리지 않는다. 수시로 SNS에 접속한다.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은 기분, 참나 카페인 우울증까지 더해진 걸까?
'카·페·인 우울증'은 대표적인 소셜미디어인 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따 만든 단어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본 타인의 삶보다 나의 삶이 초라해 보일 때 겪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우울증을 앓는 것을 뜻한다.
SNS가 먼저였는지 우울증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SNS 속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그 사람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가장 어두운 면을 비교하는 것이라던데,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비교를 멈추지 못한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비교하면서 자기 객관화를 할 수도 있고 좋은 동기부여를 받기도 하니 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다른 사람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보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좋은 자극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게 생각해서라도 비교를 하고 싶었나 보다.
결승선이 없는 트랙 위를 달린다.
땀을 뻘뻘 흘리고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도 물 한잔 마실 틈도 없어 멈추지 못하는 내가 애처롭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다리가 밉다. 애초에 결승선은 누가 그어 놓은 것일까?
각자 출발점도 다르고 도착점도 다를 텐데 난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일까, 내 결승선은 어디일까, 도착하면 환한 미소를 띨 수 있을까.
늦었지만 이제는 숨을 고르며 살아야겠다.
헐떡이며 몰아치듯 쉬어지는 숨이 아닌 진짜 내쉬고 싶은 숨을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