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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Oct 19. 2024

강박성 성격장애의 정리법

나의 강박적인 정리정돈

강박성 성격장애는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며 과도한 성취지향성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정신질환이다.

물건이 원래 있던 자리에 있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 대칭에 대한 욕구가 있다. 따라서 물건을 항상 반듯하게 두거나, 대칭적으로 두는 행동으로 사물을 제대로 맞춰 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내가 정해놓은 기준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몹시 불편하다.


강박증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세균 오염에 대한 우려

두 번째는 피해, 부상 또는 불행에 대한 책임감

세 번째는 불쾌한 생각

네 번째는 대칭, 완벽성 및 물건이나 상황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관련된 걱정


나는 네 번째에 속하는 강박적인 정리정돈 개념을 가지고 있다.

집은 내가 가장 편하게 있어야 하는 공간이지만, 집에만 있으면 하루종일 바쁘다. 내가 정해놓은 기준대로 정리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정리될 때까진 한시도 쉴 수 없다.

머리로는 이 생각과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미치도록 불안할 바에야 몸이 힘든 게 백배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박적인 행동을 되풀이하게 된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모습은 집 밖에서도 자주 일어나지만 집 안에서 그 능력이 배가 된다.

집이야말로 내가 통제하기 가장 쉬운 공간 이어서일까. 피곤해서 쉬고 싶어도 사소한 집안일이 눈에 밟혀 휴식을 미루게 된다. 빨랫감이 많지도, 설거지 거리가 많지도 않아도 말이다.

우리 집 바닥 밝은 그레이톤이다. 밝아서인지 머리카락 한 올 마저 잘 보인다.

그 머리카락 한 가닥 때문에 청소기를 꺼내 드는 나는 또 허리를 부여잡는다. 집 안을 채우는 강력한 청소기 소리에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해진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손님들은 언제나 새 집 같이 깨끗하다며 놀라곤 한다.

강박적인 정리정돈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다.



하루는 리빙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읽게 되었다.

"하루하루 물건이 빛나는 집보다 사람이 빛나는 집에서 살고 싶은 걸요. 물건보다 사람이 빛나고, 물건이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인 나의 취향과 추억으로 완성되어 가는 우리 집을 나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마음이 아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점차 늘어났고 그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마구 몸을 괴롭혔다.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할 수 없다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어지러운 것들부터 정리하자 라는 생각으로 집 안에 있던 물건들을 조금씩 비우기 시작했다.

비우는 것은 단순히 버리는 게 다가 아니었다. 물건에 담긴 추억도 잊어버리게 될까 봐 하나하나 정리할 때마다 한참을 망설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평생 비우지 못할 것 같아 몇 년간 자리만 차지하던 것들은 과감하게 버렸고, 멀쩡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중고거래 또는 기부를 통해 비워냈다. 잊어버릴까 두려웠던 추억은 마음속에 묻었다.


한번 비우고 나니 정리가 한결 쉬워졌다. 

물건을 비우니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적어졌고, 각 쓰임에 맞는 물건만 남기고 쓸모없는 건 더 이상 들여놓지 않게 되었다.

정리정돈을 통해 비워진 공간은 그대로 비워두었다. 허전해 보이진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차곡차곡 수납하는 것만이 정리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비우는 것 또한 정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미가 자기 집이 무너진 것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를 내거나 실망하는 것이 아닌 집 지을 재료들을 다시 모으는 일이다.  - 순발력은 나의 힘 中


여전하게도 거실에 있는 티비를 기준으로 가전과 가구가 대칭을 이루지 않으면 신경 쓰이지만, 전보다 우리 집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현재 가지고 있는 행복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으로 삶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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