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별 #8

by 윤군

현관문 틈으로 보았던 안경 낀 사과머리의 이름은 ‘수아’라고 했다. 24살, 3년 전 부산에서 올라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고시생. 서울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해 요즘 굉장히 힘들다고 했다.


‘내가 이런 걸 왜 알아야 하는 거야?’


불과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녀는 수아의 대략적인 프로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이 많다는 것 또한.


“우리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수아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그녀가 거절을 표시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신발 4켤레가 놓이면 꽉 차는 작은 현관이 눈에 들어왔다. 현관 맞은편에는 샤워실 겸 화장실이 있고, 오른쪽는 원래 원룸 구조인 방과 현관을 구분하기 위한 파티션이 놓여있었다. 방의 화장실 쪽 벽에는 부엌이, 반대쪽에는 옷장과 책상이 놓여있었고, 나머지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는 창문은 암막과 커튼으로 가려 있었다. 커튼 사이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자 봐봐. 짜잔~”


고양이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준비했다며, 그는 쳐놓았던 커튼을 걷었다. 넓은 창문 한쪽에 시트지로 붙여놓은 검은 고양이 세 마리가 보였다. 세 마리 모두 각자 이름이 있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냥 흘리면서 했던 말인데,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에도 없는데,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고민했을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방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건 고양이한테도 불행일 거야. 그러니까 좀 더 넓고 햇볕도 잘 드는 그런 집으로 이사하면 그때 키우자. 그럼 너도 지금보다 자주 놀러와야 해. 알았지?”



“어때요? 사시던 때랑 똑같죠? 정말 어쩜 이렇게 방을 예쁘게 쓰셨던지 바꿀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 파티션은 정말 신의 한 수예요. 현과 문 열면 방이 그대로 보이면 너무 싫었을 것 같아요. 게다가 냉장고랑 세탁기랑 커튼, 가구들 모두 그대로고 가셔서 정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가뜩이나 막 서울 올라와서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너무 힘들었는데...”


“잠깐만요!!”


“네?”


“가구들을 다 두고 나갔다구요?”


“네, 필요 없다고 그냥 두고 나가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딱 옷가방 하나랑 몸만 들어왔다니까요. 이사비용도 안 들고, 진짜 무슨 풀옵션 원룸 들어온 것 마냥 너무 좋았어요. 너무 감사해서 밥이라도 사려고 계속 연락드렸었는데 안 받으셔서...”


“혹시 언제 이사 왔어요?”


“에... 그게... 2학년 여름 방학하고 한 달쯤 있다 바로 올라왔으니까.. 대충 7월 20일 전후일 텐데... 잠깐만요. 다이어리에 보면 적혀있을 거예요.”


그녀는 (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수아의 말을 두 번이나 끊어가며 되물었다. 뭔가가 이상했다. 그렇게 급하게 방을 뺄 이유가 있었던가?


“아... 이거 우연 치고 너무 신기한데요? 딱 3년 전이예요. 3년 전 오늘, 2012년 7월 22일이요. 봐요. 신기하죠?”


수아는 그녀에게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다이어리를 보여줬다. 7월 22일 칸에는 흘려 쓴 글씨로 ‘이사, 서울에서의 첫 밤’이라고 적혀있었다. 수아의 말대로라면 그는 그녀와 헤어진 바로 다음 날 방을 뺀 것이다.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죄송한데, 혹시 마실 거 있나요?”


“에고, 제가 좀 덜렁대서... 손님 모셔 놓고서 차도 한 잔 안 드렸네요. 커피 드세요?”


“네. 괜찮아요.”


커피포트에 물이 끓기 시작했다. 보글보글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뒀었지. 일이 너무 많다고, 다른 할 일이 있다고 했었어. 그게 무슨 일이었지?’


생각해보니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자신과 데이트할 시간이 생겼다고 마냥 좋아하기만 했었다. 무슨 일을 할 건지 물어본 기억도, 들은 기억도 없었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작은 부엌에서 잔을 꺼내던 수아가 난처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하. 저기... 믹스가 다 떨어졌는데 다른 것도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수아는 그녀의 눈에 익은 냉장고를 열고 오렌지 주스를 꺼냈다. 주스는 아슬아슬하게 바닥을 가리고 있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아봐야 겨우 한 모금 분량. 수아는 아까보다 더 난처한 표정을 짓다 이내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괜찮으시면 맥주 한 잔 하실래요?”


수아의 손에는 캔 맥주 2개가 들려있었다. 수아의 손에 이끌려 이 방에 들어오지 못했더라도, 그녀는 집에 가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샀을 것이다. 그녀는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와의 술자리와 혀 끝까지 밀려온 갈증 사이에서 잠깐 망설이다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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