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별 #7

by 윤군

귀에 익은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방금 3년 전의 너를 봤어. 나와 이 앞에서 헤어졌던 그 순간의 너를 말이야. 그날은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했는데 사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어.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이라도 해야겠어. 많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들어야겠어.’


그녀는 벨이 울리는 짧은 시간동안 그에게 꺼낼 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잠시 뒤, 문 너머로 어수선한 소리와 함께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3년 전 그 순간을 다시 겪었다는 것 때문에 그녀의 생각이 단순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3년이라는 시간을 오가는 동안 그녀의 시간개념이 혼동됐을 수도 있다. 그녀는 ‘2015년의 여기’에 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사를 간 걸까? 아니야, 새 여자친구일 수도 있지. 아니야, 그랬다면 그가 문을 열러 나왔을 거야. 아니야, 그가 잠깐 나갔을 수도 있잖아.’


부정에 부정. 방금 전까지 정리했던 말들은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섞여 멘홀 뚜껑 아래로 깨끗이 흘러내려갔다.


그렇게 그녀가 당황해하는 동안 ‘철컥’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동시에 그녀의 가슴도 ‘철렁’하고 가라앉았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뭘 겁내는 거야?’


안전고리가 걸린 채 현관문이 열렸다. 딱 손바닥 한 뼘 만큼. 그 좁은 틈 사이로 낯선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 각진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앞머리 올린 사과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마와 볼에는 여드름 몇 개가 있어 젋다기 보단 어려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보다 예쁘지 않았다. 우습게도 그 사실에 그녀의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좁은 틈 사이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오히려 그녀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여기 혼자 사시나요? 아니면 누구와 같이 살고 있나요? 그렇다면 여기 사는 사람과는 어떤 관계죠? 여자친구인가요? 저는 여기 사는 사람의 전 여자친구, 어쩌면 ’전‘이 몇 번 더 붙을 수도 있는 여자친구랍니다. 밤늦게 죄송하지만 잠깐 그 사람 좀 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막상 입을 열자 그녀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저... 밤늦게 죄송해요. 여기 전 세입자인데요. 그게... 근처에 왔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잠깐 들렸어요. 죄송합니다.”


말을 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없어 보이는 대답이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왔다니. 이상한 사람이라고 신고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네.’


역시나 ‘쾅’하고 현관문이 닫혔다. 아까 그녀의 말들을 가져간 빗소리가 이번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대감을 가져갔다. 그 빈 자리에는 허무함이 가득 찼다.


‘가다가 맥주라도 한 캔 사야겠어.’


그녀가 3층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갑자기 닫혀있던 301호의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좁은 틈 사이로 보았던 안경 낀 사과머리 얼굴이 열린 문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말 꼭 뵙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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