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와 눈을 맞추고 있었지만 그녀의 어깨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비가 온다 해도 한여름의 날씨가 추울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마치 늦가을의 밤공기 속에 얇은 반팔 티 하나만 입고 나온 것 마냥 점점 떨려왔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그의 닫힌 입술을 비집고 나올 그의 목소리가 소름끼치게 무서워졌다. 더불어 그의 대답이 무엇일지도.
‘차라리 아무 말도 듣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가 어떤 말이라도 하길 바라지만, 동시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모순된 심정 속에서 천천히 시간이 흘러갔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맨 처음 했었던 포옹처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에게 한편으로는 안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서로 상반된 감정에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느 한쪽으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동안 가만히 안겨 있었다. 수도 없이 안겼던 품이었지만 무척이나 낯설었다. 늘 따뜻했던 품이었지만 온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쩌면 습관처럼 그를 마주 안았다. 하지만 그의 등 뒤로 그녀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그는 그녀를 떼어냈다.
‘왜? 조금만 더 안아줘.’
3년 만의 포옹은 너무나 짧았다.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아쉬웠다. 그와의 포옹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불과 조금 전까지 짓고 있던 서늘한 표정은 사라지고,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어떤 진실을 알고 싶은지, 지금 이 순간은 그 모든 것들이 가치 없어졌다. 다만, 그의 품에 조금 더 안겨있고 싶을 뿐이었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그가 말했다.
“우리 그만 하자.”
조금 전에도 들었던 말. 그리고 다시 듣고 싶지 않았던 말. 그 말을 뒤로 그는 돌아섰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면서도 그녀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의 포옹이 헤어져야 했던 이유를 알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을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들었다. 1층 현관과 2층 계단, 3층 복도의 불이 차례로 켜졌다. 불이 켜질 때마다 그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고, 사라졌다. 301호의 거실 불이 켜지고, 곧바로 다시 어두워졌다. 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찾지 않을까, 거실 창문을 열고 나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대로 밖에 서 있었지만, 그녀가 기대하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뿌옇게 흩어진 가로등 불빛과 적막한 빗소리만이 그녀와 함께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면목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우산 위를 때리는 빗소리와 또각또각 하는 구두 소리가 어우러졌다. 철물점 앞에서 비를 피하던 고양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지? 편의점에서 참치 통조림이라도 하나 사줄까 했는데.’
주위를 조금 둘러보니 저 앞 치킨집 아래 고양이 한마리가 보였다. 그녀가 찾던 고양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치킨집은 그녀가 처음 보는 곳이었다. 그 자리엔 아까 지나쳤던, 그와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셨던 카페가 있어야 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달력을 확인했다. 2015년 7월 22일. 어느새 그녀는 현재로 돌아와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멍해있던 정신이 갑자기 번쩍 들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그의 집을 향해 뛰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아직 괜찮아. 3년이나 지났지만 난 그 이유를 들을 자격이 있어.’
몇 번을 넘어질 뻔 했지만 무사히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3층까지 계단을 올라가 301호 앞에 섰다. 다섯 번 깊은 숨을 쉬고 그녀는 초인종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