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별 #13

by 윤군

“언니, 어디 아파요?”


‘잘 잤어요?’하는 인사와 함께 일어난 수아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물었다.


“응, 괜찮아. 어제 잠을 좀 설쳐서.”


“혹시 저 때문에...?”


‘네가 베개 대신 날 끌어안은 덕에 그런 꿈을 꾼 것 같긴 하지만...’


그녀는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대신 간단하게 꿈을 꿨던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그의 품에 안겨있어서 기분 좋은 그런 꿈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가 울고 있었다고.


“예전에 있었던 일은 아니구요?”


“응. 기억에 없어. 잠결에 봤는지 모르겠지만...”


수아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개꿈 아니에요? 아니면, 오랜만에 오빠 집에 와서 그런 꿈꿨나 봐요.”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찝찝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씻을 때 얼굴을 보니, 수아가 어디 아프냐고 물었던 게 이해가 됐다. 다크서클이 한마디 정도 내려와 있는 건 둘째 치고, 얼굴은 핏기가 없이 창백해 보였다. 잠을 설친 탓인지 피부도 거칠어져 화장 평소처럼 잘 먹지 않았다. 어제만 했어도 화장 때문에 짜증이 났을 텐데, 오늘은 그럴 기운도 없었다.


출근할 시간이 되어 그녀는 수아의 집을 나왔다. 끝까지 간단한 아침이라도 먹고 가라는 수아의 말은 ‘늦었어.’라는 한마디로 가볍게 무시했다. 실제로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수아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싫었다.


여기에서 회사까지는 그녀의 집에서 가는 것보다 30분이 덜 걸렸다. 버스와 지하철도 한 번씩 덜 갈아탔다.


‘그 핑계로 참 자주도 왔었지. 그도 내심 그러길 바랬었고.’


한때는 서로의 회사가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세수를 하다가 그가 거울에 쓴 짧은 몇 줄에 웃고, 둘이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같은 햇살을 받으며, 같은 길을 나란히 걸었다. 붐비는 지하철에 꼭 붙어 서 있다가, 선릉역에 같이 내려서,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고, ‘누가 더 서로의 뒷모습을 오래 보나’하고 다투며 출근했다. 점심 후에는 잠깐 만나서 이야기(그는 주로 듣는 쪽이었지만)를 하고, 퇴근 후에는 서로 놓칠세라 손을 꼭 잡고 한적한 릉을 산책했다. 정자각 처마 끝에 살짝 걸린 달을 보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선릉도 안 가본지 한참 됐구나.’


지난 생각을 하는 사이 선릉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밖으로 올라가는 길은 늘 혼잡했다. 그녀는 선릉역 1번 출구 아래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사람들 사이에 꽉 끼인 채로 계단을 올라갔다. 5분쯤 걷자 30층이 넘는 회사 빌딩이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늘 저 안에 들어가긴 싫지만, 오늘은 더 심하네.’


그녀는 한 번 더 한숨을 쉬고는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연아, 모닝커피 한잔 할까?”


대리님 안녕하... 대리님!!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사무실에 들어서자, 작년에 입사한 막내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화장으로 가렸다고 생각했던 창백한 얼굴은 아침에 봤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겨우 하룻밤을 설쳤을 뿐인데 이상하게 피곤했다. 기분은 기분대로 우울했다. 일하는 동안에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서도 꿈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오전 내내 세 줄 밖에 쓰지 못한 기획안과 새벽에 꾼 꿈이 동시에 머릿속을 떠돌고 있을 때, 노트북 아래에서 카톡 알림 창이 올라왔다.


언니, 어제 그 번호 전화해봤어요?


그제야 그녀는 오늘 해야 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을 생각해냈다. 핸드폰을 꺼낸 그녀는 어제 저장해놓은 번호를 열었다.


033.260.XXXX


‘누군지는 몰라도 누군가 전화를 받겠지. 뭐라고 묻고 답할지는 어제 충분히 생각했잖아. 그냥 업무로 전화하는 거랑 똑같이 생각해.’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두 번 울리고,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친절한, 하지만 녹음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열린 마음, 함께하는 병원, 국립춘천병원입니다. 입퇴원 문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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