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지 걸기

두 사람의 대화

by 윤군

매거진의 주제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딴지 걸기'라는 제목에 생각나버린

매사에 진지한 여자와

진지함에 딴지 거는 한 남자의 대화.




#1. 파도와 모래


자가 뜬금없이 말을 했다.


"파도가 불쌍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바람이 파도를 계속 밀잖아, 육지 쪽으로."

"그게 왜?"

"아프지 않을까?"


남자는 '또 시작이구나'하고 속으로 한숨을 쉬며 잠자코 있었다.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파도가 모래 위로 쓸리면 파도는 아프지 않을까? 파도는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잖아. 모래 위를 쓸리다가 돌아가려고 하면 다른 파도에 떠밀려 또 모래 위로 쓸리니까."

"바다로 돌아가긴 힘들겠지."

"그래, 계속 아프기만 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 와서 이젠 지쳤을 거야."


남자는 여자의 감수성에 감탄과 한탄을 동시에 느꼈지만 역시 잠자코 있었다. 여자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파도가 불쌍해. 매일 같이 바람에 밀리고, 모래에 쓸리고, 다른 파도에 부딪히고."


'내가 더 불쌍하지 않아?'라고 속으로 생각한 남자가 말했다.


"별로 안 불쌍한데?"

"응?"

"그렇게 오랫동안이라면 정들었을 거야."

"그런가?"

"응."




#2. 사랑과 캔커피


"사랑은 뜨거운 캔커피 같아."


역시나 여자의 뜬금없는 말에 남자는 마시던 커피를 흘릴 뻔했다. 여자는 남자의 입가에 묻은 커피를 보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추운 겨울엔 뜨거운 캔커피가 생각나잖아."


'그래서 지금 마시고 있잖아.'하고 속으로 투덜댔지만 남자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봐봐. 캔커피의 온기를 느끼려고 하나를 샀어. 근데 처음에는 너무 뜨거워. 그래서 오래 들고 있지 못하고 손이 데일까 조심스럽게 여기저기 옮겨야 해. 마치 갓 시작한 연인들처럼. 어색해서 오래 있지 못하고, 서로가 조심스럽잖아."

"그래서?"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이젠 계속 들고 있어도 될 만큼 따뜻해져. 오랫동안 만나고 같이 있어도 부담이 없는 연인들처럼."


남자는 왜인지 그 뒤에 나올 말이 예 되었지만 역시나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온기가 식어갈 때 쯤이면, 그때는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느끼려고 흔들거나 속에 꼭 품거나 하지. 한참 따뜻했을 때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연인들처럼. 그리고 이제 다 식어서 차가워지면 더 이상 그 캔커피를 찾지게 돼. 다른 캔커피를 사겠지."


남자는 여자가 들고 있는 캔커피를 보며 말했다.


"그거 안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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