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별 #20

by 윤군

‘기억’ 속의 그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그녀는 3년 전에 녹화됐을 동영상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 마주 인사할 뻔했다.


“내가 나한테 인사한다는 게 어색하지만, 이제 익숙해져야지. 아마 이걸 보고 있는 너는 충분히 익숙해졌겠지? 어때? 지금의 이곳 생활은? 오늘이 첫날인데, 아직 난 어색하기만 해. 알다시피 여기에 내 또래는 없잖아? 혹시 모르지, 지금의 너에게는 친구가 생겼을지도. 그리고 혹시나......”


동영상 속에서 그의 표정이 먹먹해졌다. 한참 동안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초조해진 그녀가 동영상을 뒤로 감으려 할 때 그가 입술을 깨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마. 넌 잘한 거야. 지금의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넌 어제보다 단어도, 사람도, 기억도 조금 더 잊어버렸을 거야. 네가 지금, 나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상상하지도 못하겠어. 아... 그렇다고 너무 놀라지는 마. 너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야. 어떻게 잊어가는 걸 ’자연스럽다‘라고 말할 수 있어?’


“혹시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생각해봐. 지금 이런 모습을 네 친구들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보일 수 있을까?”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그녀가 언급됐다. 지금까지도 한 글자를 놓치기 싫어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노트북 가까이 바짝 붙었다. 숨소리를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녀가 아무리 힘들어해도 어차피 넌 기억을 못할 거잖아. 그러니까 후회하지 마, 이게 맞아. 그리고 걱정도 하지 마. 기억을 잃는다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무섭겠지. 그래도 넌 잘 해낼 거야. 급하게 오느라고 짐 정리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잊은 건 없는 거 같아. 아니, 어쩌면 잊어버린 물건을 기억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얼마 전에는 집 앞에서 길을 헤매고, 짧은 시간이나마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없으니까.”


‘그래서였구나.’


집에 세탁기와 가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도, 귀걸이와 편지가 남아 있었던 것도, 짝이 맞지 않는 귀걸이를 바꾸지 못했던 것도. 급하게 이사하느라, 혹은 그가 기억하지 못한 채 남겨진 것이겠지.


“나는 앞으로 가능한 매일을 기록할 거야. 지금의 네가 나를 보고 오늘을 기억을 한다면 그것으로 좋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시 기억 속에 넣어 두도록 해. 넌 이렇게 살았어. 다른 사람들에게서 너를 찾지 말고, 나를 봐. 언제까지 될 진 모르겠지만, 너의 삶과 나의 삶이 마지막까지 함께 있기를 바랄게. 그럼, 내일 보자.”


2012년 7월 22일의 동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다음 동영상도 클릭했다. 두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그의 기억들을 들여 보았다.


“단어 맞추기 어플인데, 조금 지겹기는 해도 시간 때우는 데는 최고야. 오늘 기록은 29초, 네 기록은 몇 초야? 적어도 1분은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조깅을 하고 왔는데, 이 좋은 걸 왜 그동안 몰랐나 싶어. 다른 건 몰라도 여기 와서 체력은 더 좋아질 것 같아. 오늘도 뛰고 왔지?”


“오늘이 내 생일이야. 오늘 아침에 병원에서 어르신들이 생일 파티를 해주셨어. 정말 오랜만에 챙긴 생일인데, 왜 더 쓸쓸한 건지는 모르겠네. 아무튼, 생일 축하한다. 계속 잘 버텨줘서 고마워.”


2012년에는 거의 매일 동영상이 있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는 일주일에서 하루, 이틀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최근에 저장된 동영상은 일주일 중에 하루 혹은 이틀만 기록되어 있었다. 날짜가 지나갈수록 그녀가 기억하는 생기 넘치던 그의 눈빛은 조금씩 멍해졌고, 늘 깨끗이 닦여있던 안경에도 얼룩이 묻어갔다. 말은 점점 어눌해졌다.


“1분 42초. 분명히 아는 그... 단어 같은데, 생각이 날 듯 말 듯 해. 이해가 돼? 그 빨간 과일... 사과를 주면 코로 받는 건 알겠는데, 코끼리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났어.”


“매일 뛰던 그... 밖에, 코스, 운동장인데, 왜 안에... 병실로 돌아오는 길을 못 찾았을까? 이 좁아터진... 환자들이 많은 곳... 병원에서 길 헤맬 곳이 어디 있다고...”


동영상을 열어갈 때마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도 많아졌다. 그녀는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작은 표정 하나라도, 작은 숨소리 하나라도 놓칠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2015년 7월 21일에 저장된, 마지막 동영상이 재생됐다. 화면 속의 그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이... 기억에 없어. 뭘 먹고, 뭘 했는지. 사람... 누구를 만났는지. 그동안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이제는 힘들어. 미안해. 마지막으로 나 그... 그녀를 보고 싶어. 또 다시 머리... 생각... 그... 정신을 잃기 전에 사람 많은 곳... 서울로 갈 거야. 제발 오늘만은 내가 나일 수 있길.”


울먹이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동영상이 끝났다. 까지 그의 모습을 놓치려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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