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인생도 생략이 필요하다

by 윤조

사람이나 풍경을 볼 때, 실제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무언가를 보고 좋으면, 영감을 얻으면, 사진보다는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입시미술을 배울 땐 묘사를 정말 열심히 했다. 뭐든 자세히 보고 싶었고 눈이 대상에 닿도록 가까이 보며 묘사했다. 그것 때문에 많이 혼났다. 주제가 명확하고 배경은 배경으로 남아야 하는데 나는 배경까지 너무 디테일했다. 포기를 못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격이 많이 바뀌어서, 웬만하면 또렷이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왕이면 멀리서, 이왕이면 깊지 않게. 개인적인 경험이겠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아름답기만 한 것은 없었다. 어느 날 문득 그걸 깨닫고는, 어차피 눈이 안 좋아서 안경을 안 쓰면 만물이 다 뭉개져 보이니까 그냥 그렇게 내가 보이는 대로 그리기로 했다.


그림도 인생도 생략이 필요하다. 나는 그걸 너무 못해 다 붙드느라 힘들었다. 지금도 버릇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놓을 수 있는 걸 많이 놓으니 인생이 조금은 편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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