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 한 조각, 감정 한 입

by 윤다온

“하나님, 미자 권사님의 몸의 질병 구석구석을 치료해주시옵소서.

허리와 엉덩이 통증을 고쳐주시옵소서.”

한나 목사님이 미자 권사님의 아픈 곳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신다.

고요함 속에서 기도의 울림이 예배당 안을 천천히 감싸며 번져간다.

아픈 성도에게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깃들길 간절히 바라는 목사님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런데 복도 쪽에서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린다.

“집사님, 지난주에 떡 산다고 명단 적어놓은 거에서 내 이름 빼줘요. 여기서 떡 샀어.”

은희 집사님의 말에, 송편을 주문받았던 선미 집사님의 얼굴이 굳는다.

추석을 앞두고 성도들이 나눔용 송편을 함께 주문해둔 모양이다.

“아니, 집사님. 산다고 해서 이름 다 적어냈고, 그 갯수 맞춰서 갖고 와서 지금 위에 있는데 여기서 사면 어떻게 해요?”

선미 집사님의 목소리에 짜증과 화가 섞인 감정이 묻어났다.

예배당 앞 테이블에는 반질반질한 송편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지갑을 꺼내 들고 있었다.

다들 사는 모습을 보니, 은희 집사님 마음에도 작은 동요가 일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냥 여기서 사버릴까?’

잠깐의 그런 마음이, 결국 그녀의 선택을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 몰라. 여기서 샀으니까 집사님이 대신 얘기 좀 해줘.”

그 말을 남기고 은희 집사님은 엘리베이터로 사라졌다.

순간, 선미 집사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목사님이 다가가 “아휴, 산다고 했으면 그쪽에서 샀어야지...” 하며 달래보지만,

이미 선미 집사님의 감정은 끓어오른 상태였다.

한나 목사님의 손은 조금 전까진 권사님의 허리를 어루만졌고,

이제는 선미 집사님의 마음의 통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감정의 주인을 잃을 때》


예배가 끝난 뒤에도, 예배당에서 나온 선미 집사님의 얼굴엔 여전히 굳은 표정이 남아 있었다.

“아니, 목사님. 그래도 너무하지 않아요? 산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안 산다니...”

선미 집사님은 이번에는 에스더 목사님을 붙잡고 또다시 하소연했다.

옆에 있던 집사님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그런 사람 꼭 있더라니까요. 근데, 하나 남는 떡 어떻게 해.”


말을 잇는 사이, 감정은 점점 커졌다.

은희 집사님은 이미 돌아갔는데,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행동이 계속 대화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괜히 떡 더 주문해서 한개 남잖아요.살 사람도 없을텐데...”

그 말을 하며 선미 집사님은 떡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었다.

표정에는 씁쓸함이, 한숨에는 피로가 묻어났다.

감정은 터지고 나서 끝난 게 아니라,

이렇게 곱씹는 순간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감정을 붙잡는 대신, 흘려보내기

그 장면을 보며 예전에 동감하며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감정이 터질 때마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흔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안다. 감정이란 억누르려 할수록 더 커지고, 곱씹을수록 내 안에 다시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선미 집사님의 분노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정당한 감정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계속 붙잡고 되새긴다면,

그건 이제 타인의 잘못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스스로 깨뜨리는 일이다.

나 역시 예전에 그랬다. 억울함을 품고 며칠이고 되새기며 잠 못 이루던 날들.

그땐 그게 ‘정의’라고 믿었지만, 결국 나를 병들게 한 건 타인이 아니라,

그 감정을 끝내 놓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감정은 마음의 언어

감정은 억누를 대상이 아니라, 돌봐야 할 신호다. 그러나 돌봄과 곱씹음은 다르다.

돌봄은 내 마음을 살피는 일이고, 곱씹음은 나를 다시 상처내는 일이다.

감정이 올라올 때, 나를 탓하지 말고 그 감정이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의 언어임을 알아차리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자.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이제 나는 나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

송편 한 조각을 천천히 음미하듯, 감정도 한 입씩 느끼되, 다 삼켰다면 놓아주자.

그렇게 마음을 돌볼 때, 우리의 감정은 더 이상 폭발이 아니라 익어가는 과정이 된다.

감정을 돌보는 건,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습관입니다.

오늘도 자기돌봄을 기록하는 작가 윤다온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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