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예배때 유난히 마음껏 찬양하고 싶은날이었다. 내안의 어딘가. 그 울림을 필요로 하는걸까. 나는 본당안에서 드리는 예배 분위기를 좋아한다. 환한 조명. 웅장하게 퍼지는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손끝으로 북을 두드릴때 따뜻한 울림과 부드러운 리듬감이 나오는 콩가연주. 손가락이나 스틱으로 위에서 아래로 쓸면 샤르르 반짝이는 느낌이 나는 차임트리. 그 연주는 조금 더 예배로 깊숙히 집중하는 시작점이 된다. 집에서는 일찍 나갔다. 재활용 분리수거하다가 늦어졌다. 벧엘교회 도착한 순간. 전도사님은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던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본당 닫혔습니다. 복도에서 예배드려주세요.' 나의 기대와 다르게 펼쳐진 상황. 내 선택권이 사라진 느낌과 함께 순간적인 실망이 찾아왔다.
복도 VTR 앞자리에 앉았다. 본당 안에서 느껴지는 열기와 울림을 기대했던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보이는 성가대원들의 표정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은혜와 몰입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본당과 달리 복도는 공기가 훨씬 시원했다. 겨울에는 안과밖의 기온차이가 크다. 그래서 가끔 사람이 많은장소는 땀냄새가 나기도 한다. 복도는 차갑지만 맑은 공기. 낯섦이 오히려 나에게 새로운 관찰을 허용했다. 시간이 지나자 팔뚝이 싸늘해졌다. 제일 앞좌석에 앉아서 화면을 올려다보던 목. 딱딱한 의자. 조금씩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익숙함에서 벗어난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이 감각적 차이가 내 마음의 다른 부분을 깨우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하나 떠오른 것이 있다.
관점의 차이. 그것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동안 나는 왜 많은순간 단점을 먼저 보았지. 완벽하려 했던 성향. 문제를 보면 즉시 해결해야한다는 컨설턴트식 사고습관. 그 시선은 나를 좁은 틀 안에 가둬 왔구나. 좋고 나쁜 환경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가 부여한 해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 진실이 오늘 복도 예배를 통해 아주 조용히, 깊게 내려앉았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편한 점 대신 감사한점. 도움되는 점들을 왜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수 없었던가. 언제나 모든 사람은 나와 다른 세상이다. 그들의 관점을 통해 나는 나의 세계를 더 넓혀가며 확장시킬 수 있다. 그것이 우주의 일부인 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수 있다.
본당이 아닌 복도에서 드린 예배. 기대했던 것과 달랐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다. 공간이 바뀌었을 뿐. 그 작은 이동이 전혀 다른 감각과 메시지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자리 하나. 관점 하나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불편함 속에서도 새로운 시선이 태어난다.
어제 나는 불편함 덕분에 새로운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배웠고 성장했다. 좋은 경험은 완벽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서 시작된다. 그 시선 전환이야말로 하나님이 내게 계속 훈련시키는 삶의 지혜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