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불씨를 살려주는 시간

by 윤다온

엄마들에게 필요한 건 긴 휴가가 아니다. 잠깐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틈이다.
내 생일을 맞아 친한 동생 미나가 어제 광명에서 일산까지 왔다. 일산에 사는 미나동생 세나의 집들이 겸 아이들을 초대해서 같이 놀게한다고 했다. 세나가 영호를 봐준다고해서 미나는 오랫만에 자유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영호는 할일이 많아졌다. 영어. 수학. 학교 숙제. 악기연주. 태권도. 빨간펜 학습지... 그 덕분에 미나의 할일은 배로 늘어난다. 그것뿐인가. 삼시세끼 식사준비. 아이들 가르치는 과외까지. 주부의 하루는 48시간이여도 부족한듯 하다. 돌봄의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은 소중하다. 하지만 그 시간조차 현실에서는 쉽게 허락되지 못한다.

미나는 세나 덕분에 어제 영호를 세나집에 맡길수 있었다. 그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본인도 힘들지만 언니 미나가 잠시나마 힐링하라는 동생 세나의 배려였다. 미나와 식사를 마칠즈음 세나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영호랑 애들 씻기고 저녁 먹일꺼야. 다온언니랑 더 놀다가 9시까지 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세나의 지친 목소리. 육아는 함께해줄 사람이 있을 때만 쉬어짐을 허락한다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줬다.
많은 엄마들이 이 현실 앞에서 ‘잠시 내려놓는 시간조차 없다’는 사실을 떠안고 산다.
미나는 커피의 힘으로 하루를 버틴다고 했다. 나는 집에서 플랭크 5분만이라도 하는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해야되는데 자꾸 잊어버린다고했다. 강제성을 띄기위해 운동인증사진을 보내자고했다. 안한날은 벌금내기의 벌칙. 미나는 동기부여되서 계단오르기라도 했다.
일, 살림, 육아가 하루를 가득 채우면 나를 위한 시간은 가장 먼저 지워진다.
쉬고 싶어도 맡길 사람이 없고 맡길 사람이 있다고 해도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엄마들의 휴식은 늘 다음으로 미뤄진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오늘만큼은 동생이 죄책감 없이 쉴 수 있게 해주자고.
오늘 미나처럼 누군가가 작은 틈을 마련해주기만 해도 사람은 다시 살아난다.
식사를 한뒤 우리집에 들렸다. 얼굴이 촉촉해지는 벨벳콜라겐 마스크팩. 매끈한 발의 촉감을 느낄수 있는 코코넛향기나는 풋팩. 목욕 도구를 챙겨 사우나로 향했다.
발에는 양말처럼 코코넛 팩을 신은 미나. 찜질방 앞에 깔려있는 매트에 눕게 했다. 콜라겐 마스크팩을 붙여줬다. 잠시나마 본인에게 집중하도록 도왔다. 오전에 만났던 미나의 표정은 사우나에 온뒤 한결 밝아졌다.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모든 엄마가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는 여건을 가진 건 아니다.
엄마의 쉼은 누군가가 허락해줘야 가능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도 허락해야 한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돌봄의 지속성을 지키는 유일한 힘이다.

엄마들이 쉬기 어려운 건 능력 부족이 아니다. 남녀의 역할. 가사일의 역할과 분배. 구조와 환경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이다. 불은 화력이 있을땐 활활 타오르지만 금방 꺼지기도 한다. 엄마들의 일상도 그렇다. 하루 종일 타오르며 누군가를 돌보는 일. 계속 써야 하는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불씨를 다시 살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꼭 타인이 아니어도 괜찮다. 1분이라도 짧은 쉼. 잠시라도 스스로에게 여유를 허락하면 좋겠다. 큰 시간일 필요는 없다. 단 1분 작은 루틴 하나면 충분하다.
쉼은 누가 허락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편함을 허용하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