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허용하는 용기

by 윤다온


목요일 일산에 첫눈이 내렸다. 금요일 아침에 어플을 켜보니 -3도. 기모 스타킹 신고 바지 입어도 종아리 앞쪽은 시린 날씨다. 레그워머까지 완전무장해야겠다 싶었다.

옷장을 뒤졌다. 댄스할 때 신었다가 세탁해서 넣어둔 레그워머. 항상 있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타이트한 롱워머 두짝. 느슨하고 편안한 레그워머 한 짝만 덩그러니 있었다. 옷을 파헤치며 뒤졌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는 왜 아침부터 이렇게 불안해진 걸까.


불안은 갑자기 생긴일은 아니었다. 25살 네일아트 매니저로 일하던 때였다. 옆자리 세미 선생님의 시술이 끝난 순간. 그 테이블 디스플레이된 상품 하나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는 걸 포착했다. 손님 손톱을 갈고있던 손이 멈췄다. 나는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어나 그것을 똑바로 세웠다. 그런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아 다시 손톱관리를 했다.

'고객은 매장의 정돈 상태를 통해 자신의 관리 상태를 예측한다.'

책에서 읽은 문장이었다. 그땐 그렇게 믿었다. 프로페셔널하려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고. 고객에게 보이는 작은 각도 하나가 나의 성실함을 증명한다고.이래야 한다는 목록은 계속 늘어났다. 나는 나에게 끝없이 명령했다. 작은 불편함.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 그게 그때의 나였다. 치우친 균형. 원칙과 틀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짝짝이 레그워머 앞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를 냈다. 오른쪽은 롱워머. 왼쪽은 숏워머. 예전의 나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완전한 실패의 순간.

그때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이 어색함을 그냥 신고 나가보면 어떨까?’

불편함은 문제가 아니었다. 불편함을 해석하는 내마음. 그 신호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것이었다.

나는 짝짝이 레그워머를 그대로 신고 나가보기로 했다. 오른쪽은 무릎이 쪼이는 감각. 왼쪽은 헐렁한 촉감. 불균형한 양쪽의 양말 길이. 완벽하지 않은 모양. 그 감각들을 억누르지 않았다. 촉감놀이처럼 그대로 느껴보기로 한 것이다. 불편을 제거하는 대신 불편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선택을 바꾼 것이었다.


불편함을 허용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통제되지 않는 순간을 만나도 괜찮다는 감각이 스며들었다.

작은 불편을 견뎌보는 경험은 생각보다 큰 자유를 가져다준다.

완벽하지 않은 순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첫눈 온 다음 날. 밤새 얼어붙은 길처럼 예기치 않은 변수는 언제든 찾아온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가끔은 눈보라처럼 예고 없이 몰아치는 순간이 우리를 흔들어놓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를 따뜻하게 보호하는 방법은 배울 수 있다.

일상은 자주 어긋나고 마음은 종종 조급해지고 흔들린다.흔들리는 것이 곧 삶이니까.

그래서 나는 작은 불편을 잠시 허용해보려 한다.그 미세한 순간들이 쌓인다. 예측할 수 없는 삶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힘이 된다.그 힘이 바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정서적 근육이다.

오늘 우리의 하루에도 사소한 불편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때마다 완벽하게 해결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용해주자.

그 순간 마음은 조용히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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