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드로잉 루틴시간. 조심스럽게 선을 그어나가다가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인생도 선을 닮았구나.’
펜드로잉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감각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3분의 작은 루틴을 만들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더 집중하게되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선을 따라 같이 내쉬는 나의 호흡. 손끝의 감각. 마음의 속도.
이 모든 것이 결국 나와의 깊은 만남이었다. 그 시간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더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선을 긋는 속도는 음악에 따라 달라졌다. 그러면서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리듬에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리듬의 첫 번째 기준은 언제나 내가 되어야 한다. 타인이 아닌 나는 어떤 선을 그리고 있는가를 바라봐야한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왜 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할까?'
어떤 사람을 만나면 침착하다. 어떤 사람 앞에서는 속도가 붙고 에너지가 차오른다.
나는 나인데 나의 선은 매번 달랐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통제해보기로 했다.
누구를 만나든 흔들리지 않고 싶었다. 일정한 모습과 속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음악이 빠르게 흐르는데도 억지로 천천히 선을 그어보겠다고 버티는 것과 같았다.
몸이 기억하는 속도를 거스르는 일은 나를 더 지치게 했다.
양인모씨가 연주하는 우아한 유령을 들으며 펜드로잉 하던 어느날. 차분히 긋던 선이 갑자기 빨라졌다. 영재오닐의 쇼스타비치 왈츠 2번 연주곡이 나오기 시작하면서였다. 바이올린 연주에 따라 나의 선긋기는 거칠고 빨라졌다. 음악이 달라지면 선의 속도가 바뀌는 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사람에 따라 내 반응이 달라지는 것도 자연스러운것이다.
그건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리듬에 나라는 악기가 응답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차분해지는 사람과 있을 때는 그 느림을 즐긴다. 열정이 올라오는 사람과 있을 때는 그 에너지의 선을 마음껏 펼친다.
중요한것은 나의 리듬이었다. 나는 나와 어떤 리듬으로 만나고 있는가를 먼저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여러 가능성 중 하나가 상황에 맞춰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반응의 시작은 타인이 아니라 나와의 깊은 만남이다. 나와의 만남이 단단해지자 타인과의 만남도 안정되고 부드러워졌다. 선이 흔들리는 순간조차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펜드로잉처럼 우리의 선은 관계마다 다르게 그어진다. 그 출발점은 언제나 나라는 한 사람과의 정직한 만남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내 선의 결. 속도. 호흡을 먼저 이해해야 타인의 리듬을 버겁지 않게 맞이할 수 있다.
오늘 하루 자신을 더 깊게 만나보자.
손끝에서 나오는 한 줄의 선은 어떤 리듬으로 살고 있는지를 고요하게 알려준다.
그 선을 따라 천천히 깊이 나와 먼저 만나보자. 타인과의 만남도 훨씬 더 자연스러워 질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