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재 병원에서 건강검진 결과지가 우편으로 왔다.
'유방 초음파 검사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
어제 병원에 방문했다. 2년 전 보였던 물혹은 그대로였다. 크기도 커지지 않았다고 한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1년에 한 번씩만 관찰하시면 될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긴장이 풀렸다. 아주 오래된 감각 하나가 조용히 떠올랐다.
그 감각은 오늘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나는 6년 전부터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일상을 무탈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조금씩 배워왔다.
오늘의 검사는 그동안 쌓여온 감사의 마음을 다시 확인시켜준 작은 계기였다.
예전의 나는 특별한 순간을 기다렸다. 행복은 이벤트에서 온다고 생각했었다.
좋은 일. 성취. 누군가의 인정…그 중 어느 하나라도 있어야 괜찮은 하루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일상이 단조로우면 오히려 불안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자극과 변화만 좇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의 가치를 보지 못했다.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6년 전. 글쓰기. 일기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조용한 변화를 필요로 하던 시기였다.매일 한 줄씩 감사의 말을 기록했다.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숨 쉬는 일. 걷는 일. 하루를 마친뒤 편안하게 눕는 일. 당연해 보였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의사의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그동안 쌓아온 감사의 감각이 다시 선명히 떠올랐다. 49년 동안 내 몸은 큰 탈 없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구나.
물혹이 있어도 변화가 없어도. 내 몸은 조용히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내가 감사일기를 통해 배운 고마움의 자리. 어제 무탈한 몸상태를 확인한 계기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 것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괜찮다. 일상이 무사히 흘러간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선물이다.
감사는 더 이상 어떤 사건에 반응해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내 삶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은 감각이 되었다.
어제 초음파 결과는 새로운 깨달음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감사의 감각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우리의 몸은 매일 최선을 다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크게 아프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일.
그 조용한 안정이야말로 삶이 주는 가장 큰 축복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순간. 일상은 사건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는 휴대폰 배터리는 살뜰히 챙긴다. 하지만 우리 몸의 배터리가 닳아가는 건 보지 못한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하루 종일 스스로 충전·소모·복원하는 정교한 배터리와 같다.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몸은 자신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조절하며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어떤 날은 많이 소모되는데도 버틴다. 어떤 날은 작은 스트레스에도 금방 배터리가 닳아는다.
'쉬어야 해'라는 신호를 무기력으로 보내서 셧다운 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이 신호를 오랫동안 무시했다는 것이다. 휴대폰은 충전하면서 내 에너지는 1% 남을 때까지 몰아붙일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몸은 그럼에도 한 번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밤 스스로 회복하고 다음 날 나를 살아가게 할 에너지를 만들어왔다. 묵묵히. 성실하게.
몸은 늘 나보다 먼저 충전이 필요했다. 늘 자신보다 성실하게 우리리를 위해 일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