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문점 10

단풍산 오두막집 유령

by 도윤경

“헉! 안녕하세요. 가······ 가을입니다. 주······ 주문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깜짝 놀라셨죠. 저는 단풍산 오두막집 유령, 단 오령입니다. 사람의 옷을 입어 본 지 오래돼서 많이 어색하네요."


"아, 아닙니다. 아직 핼러윈 파티 준비를 시작하지 않아서 좀 당황했을 뿐입니다."


"조금 당황하신 게 맞나요? 지금 점장님 콧등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셨는데요. 지금 제가 입은 건 핼러윈 코스튬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그냥 사람의 옷을 빌려 입은 거니까요. 그래도 얼굴에서 티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군요. 저를 마주 보는 게 힘드시면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안됩니다! 단 오령 님 이렇게 가버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콧 등의 땀을 대신해 사과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오싹한 느낌이 났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 가을을 직접 찾아와 주셨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손님이신걸요. 자 노여움을 푸시고 주문을 해주시겠어요?"


"아니요. 화가 난 건 아닙니다. 핼러윈 파티 날 말고는 이렇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걸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벌써 가을이네요. 게다가 오늘 아침 누군가가 저의 집 앞에 멋진 코트를 놓고 갔지 뭡니까. 저기 보이는 산 중턱에 텅 빈 오두막집을 아시나요? 텅 비었다고 생각하셨겠지만 훗, 제가 지내는 곳입니다. 여하튼 누군가 두고 간 멋진 코트를 한번 걸쳐 봤지요. 거울을 보니 욕심이 나더군요. 나도 사람처럼 밖에 나가볼까? 하고요."


"그럼요. 그럼요. 아니 어떻게 매일 같은 곳에서만 지내실 수가 있으실까요. 참 잘 오셨습니다! 다시 보니 단 오령 님 눈빛이 푸른 보석 같으시네요. 밤이었다면 별 빛인 줄 알았을 거예요."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밤에는 어디든 돌아다닙니다. 밤에는 사람의 옷이 필요 없으니까요. 저······ 점장님?"


"네. 말씀하세요. 단 오령 님"


"사실은 점장님께 부탁이 있어서 이 부끄러운 몰골로 여기에 왔습니다."


"무슨 부탁이신지요?"


"제가 지내는 텅 빈 오두막집 말인데요. 사람이 살 지 않아서겠죠. 처음엔 멋진 식탁과 나무의자들도 있었던 곳이었는데요. 낯선 사람들이 하나둘씩 집안의 물건들을 가지고 가버렸거든요.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저에게 사람의 몸이 있는 건 아니니까 불편 하진 않습니다. 결국 오두막집에 남은 건 먼지 가득, 부서진 피아노 한대랍니다. 점장님 혹시 피아노 칠 줄 아시나요?"


"아. 조금은 칠 줄 압니다만, 왜 그러시죠?"


"한 번만 쳐주실 수 있나요?"


"제가요?"


"네. 저는 올 겨울이 오기 전에 오두막집을 떠날 겁니다. 이젠 너무 길고 추운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거 같아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듣고 싶습니다. 이 가을, 오두막집 피아노 연주를요. 어려운 멜로디는 아니랍니다. "


"알겠습니다. 언제 쳐드리면 될까요?"


"곧 가을 운동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이 좋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단풍산에서 가장 큰 메아리를 준비할 겁니다. 오두막집의 문을 활짝 열고 연주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꿈꾸던 가을빛 멜로디가 멀리멀리 울려 퍼지도록."


"차라리 유명한 피아니스트에게 부탁하는 게 어떨까요. 살짝 걱정이 돼서요. 저는 그렇게 능숙한 연주자가 아닙니다."


"아니요. 꼭 가을 전문점 점장님이 해주셨음 해요. 먼지 가득, 부서진 피아노예요. 그 어떤 피아니스트가 와 주겠습니까? 게다가 두 개의 건반에선 소리가 나지 않아요. 제가 실수로 잃어버린 마음의 소리지요."


"단 오령 님 혹시 소중한 걸 잃어버리셨나요?"


"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던 덕분에 영원히 가을의 추억을 만들지 못하게 됐거든요. 하지만······어쩌면 이번 가을 운동회에서 그 걸 찾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사람이었을 때, 잃어버렸던 소중한 마음의 일부를요. 제발 슬픈 유령의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오늘 여기까지 오기가 참 힘들었어요. 훗, 누가 유령의 말을 들어주겠습니까."


"넵! 좋습니다. 저도 용기를 내 보겠습니다! 저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정말 부끄럽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점장님, 감사합니다. 비로소 미련 없이 사람의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거 같네요. 가을빛 멜로디 악보는 단풍산 오두막집 벽에 그려져 있으니 언제라도 가서 연습하실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든 사례를 해 드리고 싶은데요. 이건 어떨까요? 캄캄한 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단 오령! 그렇게요. 푸른빛으로 앞을 밝혀드리겠습니다."


"와! 너무 과한 사례인걸요. 단 오령 님의 푸른 눈빛을 꼭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곧 가을 운동회에서 뵙겠습니다. 참! 그런데 소리가 안나는 두 개의 건반 음이 뭔지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서요."


"낮은 도, 높은 도, 두 개의 도, 도."


"도, 도 기억하겠습니다. 다음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