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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May 03. 2016

다시 혼자가 된 널 보내며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공항에서 난 조금 외롭다

막내 서하에게


네 뒷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배낭을 부리나케 둘러 메고 나가, 두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터미널을 향해 공원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지켜봤지. 지구 정반대편의 낯선 나라, 낯선 도시 한 가운데서 그렇게 헤어지는 데도, 걱정과 불안이 들거나, 슬프지는 않았어.

넌 내 똥강아지, 아기때처럼 눈물을 뚝 흘렸지만.

한 달 전 리마에서 8개월만에 만난 넌, 어쩜 그리 달라졌니. 솔직히 놀랬어.

한창 이쁘게 꾸미느라 정신없는 네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강렬한 햇살에 썬블록도 바르지 않은 채 맨얼굴을 드러내고.(덕분에 까매진 얼굴에 없던 주근깨까지 생겨 쫌 안타까웠지만)

머리카락은 보호막 하나없이 거친 바람에 늘 노출되어 긴 머리가 거칠해졌고, 샌들을 신은 발바닥엔 굳은살이 두껍게 배겨있었지.

옷차림은 또 어떻고. 구멍나고 너덜해진 헐렁한 바지 하나에 얻어 입은 남자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란.

그보다 더 놀란건 유럽,북미여행자들과는 영어로, 남미 현지인들과는  스페인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네모습.

솔직히 감탄했어. 어쩜그리 당당해졌니. 그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얘기하고 , 주도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배려하며 우리의 여행을 이끌다니.  

엄마,아빠손에 이끌려 다녔던 아이가 앞장서서 우리 손을 끌고 다니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네게 의지하게 되더구나. 그 때문에 여행중간에 네가 힘들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었지.

우리가 선택했지만, 백패킹 여행은 남들이 몇장의  사진으로만 오해하듯 늘 신나고 즐거운 건 아니라고, 우리 둘이 헤어지기 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보다는 지루하고 힘든 대부분의 일상에서 아주 드물게  행복감을 맞이하듯, 우리의 여행은 인생을 닮았다고 함께 고개를 끄덕였지. 제한된 시간과 여비는 늘 우리를 선택앞에 서게 하고 끊임없는 시행착오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기에.

엄마,아빠라는 이름의 우리는 조바심과 불안을 감추려해도 그 감정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반면, 넌 늘 괜찮다라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었어.

일부러 어리광을 부려 작아진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는걸, 우린 알아.

그러니, 그렇게 떠나보낸 네 뒷모습에 불안보다는 성인 여자로 성장한 그 당당한 걸음걸이가  너무도 아름다워, 벅찬 마음에 울컥할 수 밖에.

여행을 하면서,여행을 사색하고, 그 안에서 홀로서기를 이루려는 넌 이미 네 두 발로 딛고 일어설만큼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해.

반대로 난 내가 이렇게 여리고, 불안한 영혼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말이야.

무엇보다도 기쁘게 생각하는 건, 한달간, 매순간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지는 24시간을 온전히  함께 했기에(양파 한개를 사러가도 셋이 함께 나갔었고, 오물테러도 셋이 한번에 당하고, 라파즈에서 순식간에 당했던  그 끔찍했던 도난사고의 순간에도 함께 울고 웃고 했었지 ㅎㅎ), 그리고 함께 여행은 하지 못했어도  우리가 겪은 모든 것들을 먼저 경험한 언니도 있기에,

우리 넷은 아마도 참 오랜동안 심심치 않게 함께 웃고, 떠들수 있는 얘깃거리가 있다는거.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이번 여행은 참 좋은 선택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어.

몇개월 후에 만나게 될 네 모습은 또 어떨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인다.

사랑해, 내  아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리 부부를 먼저 떠나는 작은 딸 서하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보인다. 


작년 11월, 엄마, 아빠와의 여행을 마치고 곧장 유럽으로 건너가 언니 해인을 만난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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