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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May 03. 2016

두브로브니크, 공기가 달달해

크로아티아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Dubrovnik)로 가는 길은 멀다.


수도 자그레브(Zagreb)에서는 버스로 열 시간, 자다르(Zadar)에서는 여덟 시간, 스플리트(Split)에서는 네 시간. 독특한 지형 때문에, 기차로 가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 도시를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결국 그 모든 도시에 다 들렀다가 드디어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이다.



     

크로아티아에 도착한 이들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거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며 이 나라를 여행한다. 그중 가장 남쪽에 붙어 있는 도시가 바로 두브로브니크이다. 이 도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중간에 끼어든 탓으로 크로아티아 본토와는 단절되어 있기도 하다. 때문에 찾아가는 길도 멀고, 또 빠져나오기도 까다로운 이 도시를 그냥 포기하려고 마음먹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난 딱히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관광객이 많은 도시를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그런데도 웬일인지 끝까지 이 도시를 포기하지 못했다. 꼭 가고 싶다기보다는 꼭 가야만 할 것 같은. 그래서 한 달 반 동안 이곳저곳을 헤맨 후에, 마지막으로 밀린 숙제를 해치우는 듯한 마음으로 두브로브니크에 온 것이다.




두브로브니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들을 가지고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지만, 여행자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주로 성벽 안 구시가지이다. 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구시가지는 1978년, 일찌감치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필레 게이트(Pile gate)를 통해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구시가지의 중심이 되는 스트라둔 대로(Obala Stradun)가 가장 먼저 눈앞에 펼쳐진다. 길 전체가 대리석으로 깔린 이 대로는 누군가 윤을 내기 위해 일부러 닦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반짝 반짝 빛을 내는 밤의 스트라둔 대로

     


그 빛에 마음이 끌려, 스리슬쩍 걸음을 옮겼다가 대로의 남북으로 난 좁은 골목길들을 발견했다. 두브로브니크에게는 반하지 않을 거라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건 바로 그 때이다. 왠지 이 도시가 마음에 안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끝까지 이 도시를 찾아가려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했는데.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가 품고 있는 좁은 골목들을 마주친 순간, 나는 내 예상이 틀렸다는 걸 순순히 인정해야만 했다.


물론 두브로브니크의 이 높은 계단들이 무거운 짐을 이끌고 도착한 여행객들을 울고 싶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이 층층이 높아지는 계단들이 없었다면, 두브로브니크는 결코 지금처럼 아름답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벽 투어 중 마주치게 되는 두브로브니크의 빨간 지붕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한 건 여기저기 발랄하게 숨어 있는 골목들이지만, 그래도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핵심은 성벽 투어이다. 딱히 단체로 움직일 필요는 없고 그냥 입장권을 사서 자유롭게 성벽을 둘러보면 되니, 투어라는 이름에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가파른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2km에 달하는 단단한 성벽으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그리고 이 성벽 위를 거닐면, 도시의 안과 밖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가장 오래 시선을 붙잡는 건, 두브로브니크를 빛내 주는 빨간 지붕들이다. 사실 이곳의 빨간 지붕들이, 체코의 아기자기한 주황색 지붕들이나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를 가득 채운 하얀 지붕들보다 더 특별하게 아름다울 건 없다. 다만, 간혹 마주치게 되는 부서진 지붕 앞에서 이 도시가 간직한 아픈 기억을 떠올릴 뿐이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해 있던 크로아티아는 1991년, 슬로베니아와 함께 연방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하였다. 연방 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세르비아는 당연히 이를 반대하였고,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로 진격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에게 흔히 유고 내전(하지만 유고슬라비아는 이미 해체되었으므로, 더 이상 내전이라 부를 수 없다), 또는 제 3차 발칸 전쟁이라고 알려진 전쟁이 바로 이것이다.  당시 세르비아는 플리트비체(Plitvice)와 두브로브니크 등에 집중 폭격을 가했고 때문에 이 아름다운 도시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후, 두브로브니크 시민들과 국제 사회의 노력으로 도시는 재건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완벽하게 지우지는 못했다.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도, 두브로브니크는 슬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도 두브로브니크는 왜 이렇게 반짝거릴까? 수많은 총탄과 폭격으로 고통받은 지 채 십오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도시는 왜 이렇게 공기마저 달달할까?

     

사실 두브로브니크는 성벽을 한 번 쭉 둘러보고, 스르지(Srd)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금세 할 일이 없어지는 도시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곳에서 내내 걷고, 내내 바쁘며, 내내 웃는다. 별거 아닌 일에도 소리 내어 깔깔거리는, 울 일보다는 웃을 일이 훨씬 많은, 혼자서도 아주 잘 노는, 일곱살 난 어린아이처럼 나는 두브로브니크에서 즐겁다.




케이블카에서 내다보는 두브로브니크 전경



성벽 중간 중간에 자리한 노천 카페에 앉아 지중해를 충분히 감상하고 왔다면, 이번엔 구시가지 뒤에 자리한 스르지 산에 오를 차례이다. 이 산은 마치 여느 동네 뒷산처럼 낮은 산이라, 걸어서 오르기에도 무리는 없다. 다만,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도보보다는 산 정상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타는 쪽을 추천한다.   

     

내가 사흘 내내 머문 성벽 안이 얼마나 작은지 깨달은 건, 스르지 산에 오른 후이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는 두브로브니크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 동안 성벽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은 건, 결코 지친 이유도 어느덧 여행에 게을러진 이유도 아니다. 그저, 사흘이 아니라 한 삼십일쯤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두브로브니크의 성벽 안 마을이 마음에 든 이유이다.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는 한 번 들어서면 도무지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아지는 곳이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는 날은, 한 달반 동안 이어졌던 이 여행을 마무리 짓는 날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름 감회가 깊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기분은 무덤덤하다. 여행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고, 실은 더블린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그래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공항 행 버스를 타러가다가, 문득 생각이 나 동전 지갑을 꺼냈다. 마지막 남은 쿠나(kuna. 크로아티아 통화)를 세어보고 싶어서이다. 남은 것은 딱 12쿠나. 아침 대신 마실 커피 한 잔 정도는 살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스트라둔 대로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무슨 커피를 고를까 생각을 하다가, 이번엔 아주 달콤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이것은 두브로브니크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니까. 두브로브니크는 모든 달콤한 것과 어울리는 도시니까 말이다.






두브로브니크 여행 정보


나라>> 크로아티아(Croatia)

통화>> 쿠나(HRK. 2016년 5월 기준, 1쿠나는 약 174원)

언어>> 크로아티아어

비자>> 관광 목적으로 방문할 경우, 비자 없이 90일 동안 체류 가능

인접국가>> 슬로베니아, 헝가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와 면하고 있다.

주변 도시 이동>> 수도 자그레브에서 독일의 뮌헨, 오스트리아의 빈,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등으로 이동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자그레브부터 스플리트까지만 기차로 이동 가능하므로, 두브로브니크 여행은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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