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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Feb 28. 2017

사당동 더하기 25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독서후기

더하기 하나

우리 집 부엌 창문으로  동네 지역구의 ‘미인 국회의원’도 거주한다는, 사당동에서는 최고급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이 보인다. 6.25 전쟁 피난처로 부산에 터를 잡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난 후, 1971년 본가가 있는 서울로 상경해서 신도림동에서 2년간 살다가 1973년도에는 먹고 살길을 찾아 다시 사당동으로 이주한 우리 가족이 처음 정착한 바로 그 자리에.

주변 가게를 겸한 대부분의 집들이 그렇듯 문 하나로 연결된 작은방 두 개가 안쪽에 있고 앞쪽에는 탁자를 서너 개 놓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는 구조의, 쌍둥이처럼 나란히 붙어 있는 두 집중 왼쪽 집에 세를 얻었다. (그 당시 돈으로 20만 원이라고 한다)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옆집 아주머니의 주선으로 당시 '일수'라는 민간 대출 형태를 이용해 3만 원을 빌려 그 옆에 있던 '중앙시장'에서(지금의 고층 아파트 대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고 솥단지와 그릇을 사고, 목재를 구해 아빠가 직접 탁자를 만들고 그 위에 장판을 씌워 밥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 나는 8살이었다)

기억의 상당 부분이 왜곡되어 있거나 희미하지만, 그 집에 대한  기억 중 판자로 지은 조악한 집 뒤에 다시 이어 붙여 만든 쪽방 한 칸에 세 들어 사는 '미선'이라는 이름의 동갑내기 친구와의 일들은 몇 가지가 또렷하다. 

'미숙'이라는 그의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조용했지만, 미선은 사납고, 고무줄도 공기놀이도 잘하고, 거짓말도 잘하는 아이였다. 두 살짜리 동생까지 남동생이 셋 있는 5남매의 둘째인 그 애는 나중에 들은 바로는 우리 엄마가 부엌 찬장에 숨겨둔 돈도 훔쳐 가기 일 수였던 듯하다.

속으로는 분명히 거짓말일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애의 카리스마에 눌려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던 그 애의 거짓말 중에 기억나는 스토리가 있다. 자기네 식구들은 다른 별에서 온 왕과 왕비 그리고 공주, 왕자들인데, 악당들한테 쫓겨 잠시 피난 온 것이고, 언젠가는 그 별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는 다소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심지어 밤에 뒷마당에 나가 별을 보면서 어느 별이라고 콕 집어서 가리키기도 했다. 난 속으로 무슨 공주가 저렇게 생겼냐, 우악스럽고 못생긴 게 하면서도 미숙 언니는 어쩌면 공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공기놀이든 고무줄놀이든 사방치기이건 간에 미선이 편에만 서면 무조건 이길 수 있기에 나는 그 애가 하는 거짓말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애가 시키는 일도 대체로 마다하지 않고 했던 것 같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손님들에게 방을 다 내어주어 이불천으로 대충 가림막을 한 방 한구석에 앉아 엄마가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사주신 동화전집 속에 푹 빠져있거나, 통지표에 '수'로만 가득 채움으로써 나는 엄마의 희망으로 자라 갔고, 자연스럽게 미선과도 멀어졌다. 5학년 때쯤인가 조금씩이나마 형편이 나아지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여전히 쪽방을 벗어나지 못했던 미선이 동요대회에 나간다고 내 옷을 빌려달라며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후,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생선 노점을 하던 남편과 별도로  식당 일을 하러 나가던 착하디 착한 미선 엄마는(우리 엄마의 표현대로) 식당 일을 하다 만난 '이 상사'(과천으로 향하는 언덕에 군부대가 있었다)와 바람이 나서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부산으로 도망가 버렸고, 결국엔 서울살이를 버티지 못한 미선네는 고향인 목포 앞바다의 어떤 섬으로 떠나고 말았다.

 44년 전 다른 별에서 온 공주라고 거짓 스토리를 들려준 건 그 애였지만, 정작 사당동에 살면서도 다른 별에서 사는 아이처럼 행동한 건 바로 '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난 동네 친구들 누구에게도 동질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음을 아프게 인정한다. 엄마는 자랑스럽게 여기셨을 그 풍경, 누가 뭐라 하든 글자로 빼곡한 두꺼운 책 속을 혼자 유영하며 그들과의 경계를 확실하게 긋고자 했던 내 유년의 위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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