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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Dec 11. 2016

엄마의 그림책

도서관으로 향하는 새로운 이유

                                                                                                              

내 아이들이 그림책의 글자들을 더듬더듬 읽기 시작 할 때부터,
아이들 손을 붙잡고 아파트 단지안의 마을문고나, 조금 더 멀리 걸어가야 하는 구립도서관, 가끔은 차를 타고 가야하는 먼 아동전문 도서관까지 참 자주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글도 익히고 생각도 키우기를 바랐던 이유이지요.
요즘은 가끔은 남편과 둘이서, 대개는 혼자서 스케줄 사이사이 자투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서관 서너 군데를 이틀에 한번 꼴로 들르곤 합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과  대학생이 된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책들을 빌려 오곤 하지요.
며칠전, 30년이 넘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도서관을 드나들던 내가 난생 처음으로 여든한 살의 우리엄마를 위해 책 한권을 빌렸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친숙하게 접하도록 만든 그림책을요. 주제는 ‘길쌈’입니다. 최근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던 중에, 설날에 새 옷 한 벌을 짓기 위해서는 봄에 목화씨를 뿌리고, 누에고치를 길러 세 계절을 다 지나고서 또다시 길쌈이라는 고된 노동의 과정을 거쳐야했다는 얘기를 참 신기해하며 들었거든요.
책을 반납하러 들른 도서관, 아동 서가에서 길쌈에 관한 책을 발견하고, 그림과 더불어 큰 글씨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이 되어 있는 책장을 넘기다가, 가끔 맞춤법을 수줍게 묻곤 하시던 엄마생각이 났습니다. 빨리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에 집으로 향하고,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당신의 오래된 어린 시절 경험이 생생한 그림과, 큰 글자로 책안에 펼쳐져 있는 것을, 이번에는 엄마가 신기해하며, 큰소리로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갑니다. 어려운 받침을 익힐 수 있게 되어 더 좋다고 하시면서요.
'아,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든 걸까. 진작 빌려다 드릴껄. 그렇게 도서관을 드나들면서도 엄마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니.'
후회스러우면서도 한편 좋아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기뻤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 이런 저런 서류는 거의 아버지가 써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연필을 쥐는 것조차도 어색해 하셨죠. 삐뚤삐뚤한 당신의 글씨체가 못내 부끄러우셨던 걸까요.
노인이 된 엄마를 위해 어린이 도서관을 다시 드나들게 된다는 건, 처음 내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았던 순간만큼 마음이 설레이는 일입니다.
그때는 아이들의 생각을 넓혀 주기 위해서였고,
지금은 여든 한살 엄마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돌려주기 위해 내 발걸음이 도서관으로 향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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