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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후

2017년 6월, 미국 남서부 자동차 여행

by 오공일북클럽

여행은 일종의 '관계맺기'다. 적어도 나에겐.
어쩌면, 중간 매개체없이 직접 실체로서 마주하는 '낯선 나라'를 향한 내 방식의 말걸기다.
때로는 터무니없이 짧고, 대부분은 수박 겉핥기식 대화이지만, 그 한번의 경험이 관심과 애정의 싹을 마음 속에 틔운다.

실제로 여행 중에는 늘 시간과 돈은 부족하고, 볼 곳과 갈 곳은 많기에 결국 체력이 한계에 이르러, 과식으로 체한 상태가 된다고나 할까. 반면에 여행 과정에서 가장 설레임으로 충만한 기간인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의 직전까지는 지나친 기대와 두려움의 환상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렇기에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온 뒤 오히려 그 '싹'이 적당한 양분과 꾸준한 관심으로 단단하게 자라나는 것 같다. 무심코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도서관의 빽빽한 서가를 훑어보다가, 길을 걷다가도 나와 한 번의 대화로 마주한 '낯선 나라'의 이야기에는 귀를 쫑긋하게 된다.

여행하는 동안,
저건 뭐지, 왜 그런 걸까, 어떻게 이런 게 생겨났지... 마음 속에 흩뿌려진 궁금증들을 우선 그 나라의 역사책을 더듬는 것으로 시작해 본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살아온 걸까.
자본화된 유명 여행지의 도시나 관광지는 시스템이 비슷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 뒤에 가리워진 그들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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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녀온 미국 남서부.
관광상품도 넘쳐나고, 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지인 중에는 한번쯤 안가봤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흔한(?) 여행지이기에 오히려 선입견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보가 많건 적건간에, 그 곳 역시 나와는 첫 대면이고, 낯설지만 더 알고 싶은 매력이 있는 여행지다. 미국.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넌 그렇구나'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걸 경계하며, '너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귀를 열어놓고 싶다.

동네의 도서관 사회과학층, 역사파트, 그 중에서도 세계사 코너에는 예상했던 대로 선택할 수 있는 미국사 책이 많다. 목차의 소제목에서 극명한 역사관이 엿보이는 나란히 꽂힌 두 책 중에서,
알베르 까뮈의 '어떤 나라의 역사가 한 가족의 역사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정복자와 피정복자, 주인과 노예, 자본가와 노동자, 인종 및 성별상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때로는 폭발하지만 대부분은 억압되는 이해관계의 격렬한 갈등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갈등의 세계에서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생각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 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단정보다는 의문을 많이 던지는 책을 골랐다.

처음에는 여행자에게 무한한 자유와 편의를 열어주는 '프리웨이'의 질주를 만끽하다가 점점 그 바퀴아래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로드킬'을 목격하며 내내 불편했던 만큼,
화려한 자본의 모습 뒤에 가리워진 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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