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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Jul 24. 2017

여행이 주는 물음

모처럼 여유로웠다.    

사슴이 한가로이 걸어 다니는 자이언 캐년 캠핑장의 조용한 아침,    

커피와 함께 가볍게 아침식사를 하고, 침낭을 털고, 텐트안 모래도 빗자루로 말끔히 쓸어낸 후, 모든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반듯하게 실었다.    


캠핑여행 7일차. 

어느새 우린 환상의 팀워크를 이루고 있다. 둘의 여행취향과 속도는 다르지만, 한달을 함께 하려면 무엇보다 불화가 있어선 안되기에 각자 조금씩 한걸음 물러서고, 상대방의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맞춰 주면서...

그중에서도 특히 캠핑장에서의 청결과 신속한 속도의 팀워크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고나 할까.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시간은 겨우(?) 두 시간 반 정도 밖에 안 되고, 캠핑장을 나선 시간은 아침 8시쯤이니...

짐을 다 싼 마당에 또다시 하이킹을 하자고 하면 손사래를 칠 것이 뻔해,

빨래 한번 해볼까 라는 제안을 했다. 역시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남편.    

차를 타고 국립공원을 벗어나자 바로 앞의 스프링데일 관광타운에서 LAUNDRY란 간판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세탁기에 모아놓은 빨래를 넣고 세제를 사려고 하는 순간, 먼저 빨래를 하고 있던 한 여자가 다가와 자기세제를 쓰라고 친절한 제안을 한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긴 금발, 에스닉풍 블라우스, 가위로 그냥 자른 듯 올이 풀린 낡은 청반바지, 스트링 샌들을 신은 그녀의 모습이 이 곳 유타의 자연환경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스쳤다.

세탁기와 건조기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 그녀와 넓은 창문 밖 자이언의 멋진 풍경을 보며 서툰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의 여행이야기, 그리고 이곳 주민이라는 그녀의 소개, 이어서 유타의 풍부한 자연환경, 그중에서도 관광객이 손꼽히게 많은 이곳 자이언에서 사는 이야기를 잠깐 듣는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사니 얼마나 좋겠냐는 우리의 말에 그녀는 씁쓸하게 대꾸한다.    


‘주 정부는 부자겠죠, 하지만 여기 사는 우리는 집세도 너무 비싸고, 물가는 치솟고, 살기 너무 힘들어요’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제주도민에게서, 얼마 전 뉴스에서 접한 베니스 주민에게서, 그리고 더 가깝게는 주거지로부터 밀려날 위기에 처한 서울도심주민에게서 종종 듣는 이야기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여행산업이 그 여행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에 대해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네팔, 페루, 볼리비아, 베트남 등 전반적으로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한 여행지에선 어렵지 않게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자리 창출, 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산업 활성화 등의 긍정적 측면,

엄청난 쓰레기, 전통적 가치의 파괴 등 물질적, 정신적 오염 등등.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선진국의 경우엔 겉모습만 보고 부정적 영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지할 수 있는 건,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이 극도의 자본화 속에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어디든 서민의 삶은 녹록치 않다는 것,

때로는 관광정책이 원주민을 교묘히 배제하고 심지어는 주거지로부터 그들을 쫓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곳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 유타의 유명한 관광도시에서도 그걸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어느새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우리의 행운을 빌어주는 그녀와 가벼운 작별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파란 하늘과 태양빛이 반사되어 더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와 그곳에 발을 딛고 사는 현지인들,

우리의 접점은 어디일까,

친절하게 건넨 말 한마디, 작은 도움을 넘어선 공생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여행을 할수록 깊어져가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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