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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브런치 마당에 들어올 거지?

엄마와 딸이 함께 가꾸는 브런치 글마당

by 조선여인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개성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강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추구했던 딸아이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한국에 돌아와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으나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 흥미를 갖지 못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내 가슴은 풍랑을 맞은 배처럼 한없이 출렁거렸다. 과를 바꾸었으나 결국 자퇴 후, 다시 미국대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잠시 들렀다가 엉뚱한 곳으로 눈길을 돌리는 바람에 다 잡은 학위를 놓치고 말았다. 모험은 했으나 방향키를 잘못 잡은 탓에 그동안의 모든 투자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영민했던 아이 얼굴에는 불만이 딱지처럼 붙어 떨어질 줄 몰랐고, 자존감에 깊숙이 상처가 파였다. 마음의 병이 사람을 얼마나 갉아먹을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한국이 맞지 않아.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끼었다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을 책망하는 딸을 부둥켜안고 울기도 많이 했다. 아이의 방황은 좀체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데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이 야속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주를 들먹이며 또다시 외국행을 준비하는 딸을 지켜봐야 했다. 성과 없는 유학 생활에 진력났음에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아이한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저 뚝심이 부족했던 과거는 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나가자 독려했을 뿐.

나는 오래전부터 아이한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엄마는 네가 어떤 직업을 갖든 글을 썼으면 해. 네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기를 바라.”

‘전국 일기 쓰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전력이 있던 아이였다. 대학이라는 관문을 뚫기 위해 글쓰기를 외면하지만 않았어도 웃음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다시 불러올 수만 있다면 막혔던 인생도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인생의 단맛, 쓴맛을 한데 버무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올리면서 마음의 고요를 찾아가는 나처럼.

아이는 그날 밤을 꼬박 새워 만든 두 편의 글로 브런치 문을 두드렸다. 재능이 아직 남아 있었던지 며칠 만에 작가 승인을 받았다. 이역만리 타향살이에 글 쓸 여력이 있을까마는 ‘작가’라는 이름표가 분명 큰 힘이 되어 주리라 믿었다. 앞날이 가시밭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아이는 그렇게 훌훌 캐나다로 떠나갔다.

"잊지 마. 너는 브런치 작가야."

내 말에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생긋 웃음 지었을 때,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보는 듯했다.


나는 브런치 마당을 수시로 드나들며 글을 쓰고, 때로는 남의 글에서 영양분을 얻기도 했다. 딸아이와 소통을 하면서도 글쓰기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꾹 다물었다. 홀로 떠난 낯선 환경에 친숙해지는 것도 힘에 부칠 텐데 부담까지 주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우울을 극복하려면 글부터 써.’라고 채근했으나 묵묵히 기다렸다.

아이가 떠난 지 두 달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습관처럼 이른 아침 브런치 마당에 들어섰는데 딸아이 닉네임이 메인 화면에 뜬 게 아닌가. 내 딸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표시였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지그시 누르며 단숨에 아이의 브런치 마당으로 달려갔다. 몇 편의 글과 구독자, 라이킷이 보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자체만으로 ‘이젠 됐다.’라는 안도의 숨이 쉬어졌을 뿐이다.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자 나를 따라다니던 우울이라는 녀석이 냉큼 사라져 버린 경험을 맛보지 않았던가.

글은 역시 한가하고 편해서 쓰는 게 아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살 찌우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하는 행위이다. 늦은 나이에 학교 다니랴, 살림하고 아르바이트하기도 바쁠 텐데 글이라는 꽃을 피우기까지 얼마나 애썼을까. 어렵사리 피워낸 꽃이 힘들어하는 독자들의 마음도 헤아려준다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렸다.

글쓰기에 왜 그토록 진심이었는지 이제야 엄마를 이해한다며 카톡으로 고백해 왔다.

“엄마, 내가 겪어온 시행착오를 책으로 엮고 싶어.”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꽃송이보다 어여쁜 우리 딸. 가슴속 뱀처럼 똬리를 틀었던 두려움과 우울을 글쓰기로 극복할 수 있어 너무 기뻐. 노년의 길목에도 아름다움을 새길 수 있다고 믿는 엄마와 함께 부지런히 '우리의 꿈'을 가꿔보자꾸나. 우리의 브런치 마당에 싹이 트고 꽃이 피면 언젠가 열매도 주렁주렁 맺힐 날이 올 거야.

사랑하는 우리 딸, 오늘도 브런치 마당에 들어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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