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의 브런치 글빵연구소 숙제입니다(제11강)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과 함께 산에 올라갈 준비를 서두른다. 숲으로 들어서는 건 자연을 만나는 시간이다. 온갖 새들이 상큼한 목소리로 지저귀며 반겨준다. 밤새 내려앉은 이슬방울을 총총 매단 나무들이 잘 왔다며 눈웃음 친다. 앞다퉈 기운을 내뿜는 초록 이파리들이 우리를 환영한다.
나는 용왕산 정기가 온몸에 스며들 수 있게 힘을 완전히 뺀 상태에서 심호흡한다. 그동안 산이 주는 사랑을 알지 못한 채 부대끼는 삶의 틈바구니에서만 살아왔다. 산 가까이에 살면서도 그 존재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뒤늦은 후회를 한다. 하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인 셈이다.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기자 나이 탓만 했다. 아프다고 꼼짝하지 않는 게 오히려 병을 키운 것 같다. 우리 몸은 자연치유 능력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무리하지 않고 살살 써주는 게 오히려 득이 된다는 걸 왜 몰랐을까.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나브로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끼기 시작한다. 산이 뿜어내는 정기와 함께 꾸준히 걷다 보면 관절도 한결 부드러워질 것 같아 희망을 갖는다.
산을 오르며 주민의 질 좋은 삶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지자체에 대한 고마움도 생겼다. 오르막에 황톳길을 예쁘게 다듬어 놓아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다. 황토가 몸에 좋다고 하니 유행을 타듯 지자체마다 관심을 쓰는 모양이다. 씻을 수 있도록 수도까지 설치하는 배려심에 세금 낸 보람을 가져보기도 한다. 지친 마음을 정화하라며 군데군데 작은 정원까지 가꾸어 놓았으니 가을을 맞아 꽃구경 나들이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기체조 하는 날이라 서두르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망설이다가 우산을 든 남편이 앞장서는 바람에 따라나섰다. 습관이란 건 하루라도 빈틈을 보이면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기 마련이다. 이불을 박차고 따라나서기를 백번 잘한 것 같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제시간에 산을 찾은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서 사방을 빙 둘러보았다. 연일 타들어 가는 듯한 태양열로 목말라 하던 대지 위에 가는 빗줄기가 촉촉이 내린다. 얼마나 기다리던 비 소식인가. 촉촉해진 땅과 빗방울을 머금은 나무를 보면서 잠깐이나마 꾀부렸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기운이 떨어질수록, 몸이 찌뿌둥할수록 규칙적으로 산에 올라야 개운해지는 당연한 사실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산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늘 마주치는 약수터 앞을 지나쳤다. 코로나 이전에는 커다란 물통을 놓고 줄을 서서 약수 받느라 북새통을 이루던 곳이다. 지금은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을씨년스럽기만 한데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올 뿐이다.
약수터 앞에는 키 작은 산철쭉 무리가 서 있다. 왜소해 보이는 산철쭉 나무가 오늘따라 더 힘에 부쳐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무 위에 웬 골프채와 빈 물병이 떡 하니 올라앉은 게 아닌가. 갑자기 며칠 전 일이 퍼뜩 떠올라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날도 이곳을 지나치다가 산철쭉 나무 위에 큼지막한 쓰레기 봉지가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다. 내 머리 위에 누군가가 커다란 짐 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쓰레기가 가득 담긴 커다란 봉지라니. 나는 얼른 쓰레기 봉지를 치워주면서 나무한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나무야.”
이번에는 한술 더 뜬 사건이 아닌가. 무거운 골프채와 커다란 물병을 머리에 이고 있으려니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힘들었을까.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숲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걸 잠시 잊어버리기라도 한 건가. 말 못 하는 식물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한 짓이 틀림없었다. 만일 식물 알기를 우습게 여기는 습관이 든 사람이라면 숨어서라도 찾아내어 잘 타일러 주고 싶었다.
나는 남편의 걸음을 잠깐 멈추게 하고는 골프채와 물병을 재빨리 땅바닥에 내려놨다. 무의식중에 대상 없는 푸념까지 튀어나왔다.
“세상에, 나무는 안 힘든 줄 아나 봐. 이 무거운 걸 왜 올려놨냐고.”
그때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사람이 땅으로 내려오면서 내딛는 소리였다. 개의치 않고 발짝을 떼어 돌아서는데 둔탁한 남자 목소리가 내 목덜미를 덥석 잡아챘다.
“남의 골프채는 왜 던지는 거요?”
대뜸 내 앞길을 막아서더니 삿대질부터 했다.
둘레에 남편 이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나한테 하는 삿대질이 분명했다. 척 봐도 운동을 제법 많이 했을 듯 다부진 몸의 아저씨였다. 반사적으로 내 몸이 움찔했다. 무미건조한 말투로 보아 아침부터 한 판 싸워보자는 심보로 보였다. 평소처럼 소심한 성격 그대로라면 얼른 사과부터 하고 자리를 떴으련만. 수그리고 싶은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미동도 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아저씨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입은 꾹 다문 채 눈에만 레이저 빔을 쏘았다. 무반응에 싱거웠는지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느냐고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마침내 참고 참았던 말이 내 입을 뚫고 튀어나왔다.
“식물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요.”
아저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내뱉었다.
“쳇, 뭐라고? 식물이 뭐가 아프다는 거요?”
떨림 없이 직진하는 내 말에 아저씨도 지지 않겠다는 듯 큰소리로 맞받았다.
“약수 받고 나서 골프 연습하려고 올려둔 건데 왜 바닥에 내려놓는 거냐고.”
나는 다시 한번 내 말에 힘을 주었다.
“나무도 힘들어요. 골프채가 얼마나 무거운데요.”
산에서 내려오던 분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나직한 소리로 나무가 힘들까 봐 내려놓은 것뿐이라며 동조를 구했다. 그분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곧장 사라져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아저씨의 구시렁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더 오래 마주했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판단했던지 남편은 내게 눈짓을 보냈다. 산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 전체의 것이라 일침을 주고 싶었지만 못 이기기는 체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매일 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우리는 매일 산에 오르면서도 귀함을 모른다. 받은 만큼 사랑으로 돌봐주지는 못할망정 무시하고 짓밟는 건 도대체 무슨 심술일까. 산에 쓰레기통이 없다면 내가 만든 쓰레기는 들고 내려오는 게 기본적인 상식이다. 물건을 잠깐 놔둘 거면 식물 위가 아니라 바닥에 놔두는 게 인지상정이다. 고 예쁜 초록 잎사귀 위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올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까. 고 가녀린 식물 위에 쓰레기 덩이를 얹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까.
산을 다 내려와서도 내 머릿속에는 ‘나무도 아프대요.’라는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자연이 아프면 지구가 아프고 지구가 아프면 나도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