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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Jul 07. 2023

부자가 되고 나서 보이는 것들

"갑자기 돈이 많아져서 무서웠습니다."

  '집을 몇 채나 갖고 있는 사람이 왜 부동산을 기웃거릴까?'

'돈을 지천으로 가진 사람이 왜 자꾸 돈, 돈 거리지?'


나는 욕심 인자가 없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줄 알았다. 그래서 갈쿠리로 긁어모아 천장 높이 쌓으려는 사람 이해하 힘들었다.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생활양식이 다른 법인데 나와 같지 않다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심상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내 자신이 부자가 되고부터였다. 부자들의 심리가 슬슬 이해되면서 공감 부분도 많이 생겨났다.  편협한 생각으로 좁은 시야에 갇혀 살았던 게 참으로 어리석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처음부터 밑천을 두둑하게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출발은 빈약했지만 지금은 누구한테나 '나는 부자요.' 하고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된 것 같다. 물론 내 앞으로 더 큰 부자가 나타난다면 납작 엎드려야 될 테지만.


몇 년 전에 아는 분한테 예쁜 꽃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베란다에 놓고 금지옥엽 대하듯 정성을 다다. 동그마니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쓸쓸해 잘 어울리는 꽃을 하나 들여왔다. 나란히 놓고 보니 다정한 한 쌍의 부부 같았다. 부부가 세월을 함께하다 보면 자식이 태어나는 법이 아닌가. 얼른 화원에서 작은 꽃 두 개를 사 와 정성을 쏟았더니 네 식구는 병치레 없이 잘 자라났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작고 앙증맞은 꽃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화원을 들르는 횟수에 따라 꽃은 늘어나고 베란다는 점점 좁아졌다. 내 일손 또한 쉴 새 없이 바빠졌지만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거웠다.


화단을 내다보며 문득 '내가 욕심 없는 사람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조그만 틈새라도 보이면 메우고 싶어 안달을 부렸기 때문이다. 여백의 미를 감상할 수 있어서 동양화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나의 꽃밭엔 한 치의 여백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구억구천구백만 원 가진 사람이 십억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더 많이 가지려고 고군분투다.


"앗, 저기 빈틈이 보이는군. 얼른 채워넣어야지."


꽉 들어찬 베란다는 신기하리만큼 고무줄처럼 늘일 수 있었다. 요리조리 화분을 움직이다 보면 한두 개쯤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사들인 게 대부분이었만 삽목으로 개체수를 늘린 것도 꽤나 된다. 남들이 자나 깨나 돈 벌 궁리할 때 나는 꽃을 벌 연구만 했다.


"돈 모으는 재미도 이런 걸까?"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날이 갈수록 꽃이 무성하게 번창해나갔다. 처음에는 잘 기를 수 있을까 정하던 것이 이제는 자신감이 머리꼭대기까지 올랐다. 동네 작은 가게를 흉내 낼 정도로 이 많아졌지만 내 욕심은 멈춰 서지 않았다. 흔들리는 잎새만 봐도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가슴에 북두질을 해댔다.


'기른다'라는 소형차를 탔던 내가 어느새 '모은다'라는 거대한 차로 갈아탄 모습이었다. 가족들은 혹시 모으기 중독 증세가 니냐앞으로는  한 포기 들여오지 말라 사정했다. 사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해진 베란다를 바라보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까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올라탄 '모은다'라는 차에서 내려오기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요즘 손이 퉁퉁 붓는 게 하도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류머티즘 인자가 있으니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며 몸 쓰는 일은 금하라처방을 내렸다


'당장 분갈이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를 어쩌나.'


새 방을 꾸며주고자 준비한 수십 개의 화분이 야무진 내 손길을 기다리는데 몸을 쓰지 말라니 큰일이었다. 가슴에 걱정거리를 잔뜩 얹고 버스에 올랐다. 광고용 TV 화면에 어떤 젊은 기업인이 카이스트 대학에 이백억대의 거액을 기부했다는 뉴스가 자막으로 떴다. 짤막한 인터뷰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어 여운을 남겼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돈이 많아지니까 무서워져 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내가 번 수많은 꽃들이 버겁게 그려졌다.


'그동안 내 분수에 걸맞지 않은 짐을 이고 지고 힘겹게 살아왔구나.'


적게 가지면 불편해도, 너무 많은 것을 지니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꽃이 필요한 사람들, 삶에 희망을 주는 곳에 나도 기부를 하고 싶다. 혹시 모를 인터뷰 요청에 대비해서 짤막한 소감 하나 준비하련다.


'화초를 많이 모았습니다. 늙은 나이에 꽃이 많아지니까 무서워져 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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