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재주도 덕도 부족한 몸으로 이 세상, 흐뭇하게 살다 가게 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평생 좋은 글로 칭송을 받아왔던 어느 수필가가 쓴 유서다.
수년 전, 나도 피서지에서 유서를 써본 적이 있다.
“빨리빨리 떠날 채비들 혀.”
설핏 잠결에 귓전을 때리는 시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촌각을 다툴 정도로 다급한 투였다.
“동네가 다 휩쓸리게 생겼어. 둑이 무너진댜.”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전등불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더니 아예 정전이 되고 말았다. 삽시간에 검은 장막이 사방을 에워쌌다. 손전등을 든 아버님은 종종걸음으로 피신 준비를 서둘렀다.
남해안이 좋을까, 동해안이 좋을까 고민하다 남편 고향인 서해안으로 여름휴가를 온 지 이틀째. 온종일 비를 맞으며 곤충과 놀다 잠에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얘들아, 개천 물이 넘친대.”
억지로 눈을 뜬 아이들은 물이 넘친다는 말에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사람과 가축이 물에 떠내려가는 광경을 여름 내내 TV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집 앞에 있는 넓은 개천은 한순간에라도 읍내를 집어삼킬 듯 무서운 기세로 넘실댔다. 아버님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굵은 장대비 속으로 차를 몰았다. 금방이라도 번쩍거리는 번개가 차지붕 위로 내려 꽂힐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읍내 한복판을 지날 때였다. 그 숱한 사람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갈팡질팡 허둥대는 모습에 '물난리'가 실감 났다. 다행히 산으로 가는 쪽 다리는 물에 잠기지 않아 산길을 타고 정신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산 중턱 너른 터에 도착하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집을 짓기 위해 세워놨던 컨테이너 박스 문을 열어젖혔다. 곰팡내가 확 풍겼다. 실내를 둘러보니 가스레인지도 있고, 라면 박스도 있어 일단은 안심했다. 하지만 산속 피신 생활이 길어진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초조함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숨 돌린 아버님은 땅문서며 금고의 돈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번개는 유리창을 부수고 금방이라도 뛰어들듯 기세등등했다. 그칠 줄 모르고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더니 다시 중얼거렸다.
“암, 목숨을 건진 것만도 다행이여.”
“그류, 이만한 게 다행이잖유.”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며 맞장구치던 어머니는 그 긴박함 속에서도 연신 아침거리를 걱정했다. 애꿎은 라면 박스가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의 온갖 근심걱정을 머리에 이고 사는 나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굵은 빗줄기는 컨테이너 박스 창문을 쉬지 않고 두들겼다. 옆에 떡 버티고 있는 거대한 산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저 산이 우리를 덮친다면?’
긴장한 탓으로 입안은 쩍쩍 갈라지는데 재밌다고 방방 뛰는 아이들은 어른들 걱정에 부채질을 더 했다.
함께 왔던 남편은 비상사태 발령으로 은행에 휴가를 반납하고, 천둥번개 요란하던 어제 새벽에 급히 서울로 떠났다. 식구가 다 함께 죽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한 목숨이라도 건져 집안의 대를 이어야 옳을까. 얽히고설킨 복잡한 걱정들이 머릿속에서 이내 거미줄을 쳐댔다. 그때 유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혹시 모를 죽음 앞에 쪽지 한 장쯤은 남겨두어야 할 듯, 사방은 어둡고 음습했다.
이렇게 속절없이 떠날 것을 그동안 왜 그리 바둥거리며 살았을까. 다음 생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어둠 속에서 수첩을 꺼내드는 심경은 착잡했다.
<잘해드리지 못한 부모님들, 더 큰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한 우리 아이들. 좀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당신. 나 죽거든 꼭 재혼해요.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가지 부탁은 나 죽었다고 넋 놓고 울고 계실 우리 친정엄마, 가끔씩 찾아뵙고요. 세상에서 우리 사위 제일 예쁘다며 동네방네 자랑했잖아요.>
막상 유서를 쓰다 보니 당장 죽음에 맞닥뜨린 사람처럼 눈물이 핑 돌았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께 걱정만 끼치다 하직하는 내 인생······.’
마지막 문장을 맺으려는 찰나, 아버님이 소리쳤다.
“야, 이젠 살았다.”
어느새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로 서서히 먼동이 텄다. 천둥 번개가 잦아들면서 유리창 철망 사이로 서서히 희망의 빛이 들어왔다. 산 아래 높은 건물 위에 어슴프레 두 팔을 치켜든 사람들이 보였다. 만세를 부르는 듯싶었다. 밤새 사나웠던 빗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는 슬그머니 아침 햇살을 데려왔다.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산을 내려오고 나서야 밤새 옥죘던 가슴을 펼 수 있었다.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는 인파로 읍내 사거리는 들썩거렸다. 나는 열적은 얼굴을 한 채 차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힘껏 흔들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표시였다.
내가 쓴 유서는 어디로 갔을까. 죽음 앞에서 써 내려갔던 그날의 가슴 졸임은 아직도 생생하건만.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또 남의 집 대문 안을 기웃거린다. 옹졸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또 지지고 볶으며 속을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