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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Dec 09. 2023

'아픔을 넘어서' 희망으로

고통, 이보다 더 클 수는 없다

   새로 설립한 강서 아트리움에서 황동규 시인의 강의가 있었다. 강당에는 문학에 대한 향기를 공유하고자 모인 사람들로 꽉 찼다. 시인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시, '즐거운 편지'와 '조그만 사랑 노래'를 지은 분이다. 생각보다 연로지만 문학하는 삶을 널리 전파하기에는 충분히 강단 있는 분으로 보였다.


'아픔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강의가 시작됐다. 시인은 어린 중학생 나이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엄청난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6.25 전쟁통에  산 피난생활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차비를 아끼느라 먼 거리를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어쩌다 트럭을 공짜로 얻어 탈 수 있던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동생과 함께 야채행상으로 번 돈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트럭이 잠시 멈추었다. 트럭 짐칸에 재빨리 동생을 먼저 올려주고 뒤따라 올라타는 순간 차가 급하게 출발해 버렸다. 손으로 차 난간만 붙잡은 상태였지,  채 올려놓기도 전이었다. 달리는 차에 매달려 어정쩡하게 중심을 잡지 못한 몸은 살짝만 까딱해도 바닥으로 나동그라질 형편이었다. 떨어지면 죽는다는 절실함으로 차 난간을 드느라 두 손에 얼마나  힘어졌을까. 서서히 힘이 빠지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형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동생도 애가 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각지대에 매달린 사람 확인하 않은 채 앞만 부며   운전사에 대한 원망 또한 극에 달했을 것이다. 어린 시인은 서대신동에서 서면까지 그 먼 거리를 죽을힘을 다해 매달려갔다. 삶에 대한 절실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붉은 피가 온통 얼굴 전체로 몰렸을 것은 안 봐도 한 일.


그때 경험했던 아픔은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아픔보다  최악이었다.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밑거름이 어 주었다고 역설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그날의 고통에 비하면 웬만한 어려움쯤이야 시답잖은 것으로 쉽게 헤쳐나갈 일이었다. 인생 항로에 순탄한 노를 젓게 해 준 원동력이 오히려 아픔 덕분이었다고 술회했다. 죽음 앞지 갔던 그날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앞으로 그보다 더 한 고통은 없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살아올 수 있었다.


시인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 닥칠 때마다 '트럭에서 살아난 사건'을 떠올렸다. '이까짓 것쯤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고, '할 테면 해 봐!, 아무것도 아닌 일이잖아.'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좋은 시를 써 세상에 알려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죽음'이라는 가장 어려운 명제를 일찌감치 경험한 덕분으로 단단히 달구어질 수 있었다.


나는 가끔 딸아이한테 말하곤 한다.

"네 인생에서 그때보다 더  일은 없어. 앞으로 극복해 내지 못할 일은 이 세상에 단 한 가지도 없을 거야.'


딸아이는 미국 고등학교를 마치고 잠시 한국 대학을 다니다가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여름 방학 때 잠깐 한국에 나와 아르바이트를 알아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광고 호기심으로 찾아갔던 종로의 한 미용실이 아이의 앞날완전히 헝클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처음 얼마 간은 새로운 일을 접한 터라 흥미를 가지고 책임감 있게 일을 시작했다. 스스로 일해서 돈을 는 건 처음좋아하기까지 했다. 미용실 대표는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부모인 우리한테도 깍듯하게 대했다. 나는 다른 교육생들과 잘 어울려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용실 식구들에게 거리나 선물을 내주었다. 유학생 신분이라 또래들한테 혹시 배척당하거나 따돌림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사전에 지하는 차원이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긴 걸 보니 미용 기술을 타고났네. "

엉터리 같은 믿지 못할 말에 현혹 아이는 당장 그해 가을 학기 등록을 하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모는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자식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즈음 해서 대표는 몇 년 안에 디자이너를 만들어주겠다면서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조건은 5년 동안 미용실에서 보조 일을 하며 교육을 받아야 하고, 중도에 계약을 파기하면 교육비 5천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헤어 디자이너로 성공하겠다는 아이의 확신에 찬 말을 그대로 믿고 계약을 파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단정했다. 미용계에서 알아준다는 대표 또한 '5년 안에 무조건 디자이너를 달게 해 준다'는 달콤한 말로 계속 유인했다. 우리는 앞뒤 잴 겨를이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최저시급으로 받은 월급에서 교육비, 식사비 등이 빠져나가 거의 무임금이나 같은 수준이었다. 새벽 출근 후 자정을 넘겨 집으로 들어왔으니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 셈이다. 육체노동의 강도는  비상식적으로 너무 세서 아이는 매일 지쳐 쓰러졌다. 출근하자마자 매장 청소 밤늦게까지 매장 뒷정리를 하고, 수십 장의 수건을 개어놓고 나면 매일 12시가 넘었다. 아이가 들어오기를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문을 열어주면 현관에서 신발도 다 벗지 않은 채 중문 턱을 넘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 잠이 들었다.


아이는 주말도 없이 매일 일을 했다. 약속했던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허드렛일만 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날이었지만 교육을 핑계로 불러냈다. 날이 갈수록 아이는 말수가 적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표정은 무서워졌고 성질도 날카로워져서 옆에 있으면 늘 불안했다. 마음 놓고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매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니 가족들은 눈치만 볼 뿐이었다. 아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계약서를 쓴 다음날부터다. 아이를 대하는 대표의 태도가 완전히 돌변하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아이를 붙잡아두기 위해 감언이설로 구슬렸던 것이다. 계약서에 적힌 대로 교육을 해주어야 하는데도 무시하고 일만 시켰다.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는 물론 미용고등학교를 나온 그야말로 손재주 좋은 다른 교육생들과 비교당하며 면박 듣는 일이 잦아졌다.


인권침해 발언을 일삼기도 했지만 아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죽은 듯이 살 수밖에 없었다. '미용 기술을 타고 난 손'이라며 아이를 현혹했던 대표의 입에서 '이까짓 것도 못하는 둔한 손'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여기서 배겨 나지 못한다면 위약금을 물어내야 한다위압감에 아이는 입을 봉하고 다녀야 했다.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눈치를 챈 대표는 '위약금 5천만 원을 배상할 수 있으면 당장 나가도 좋다.'라고 배짱을 부렸다.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어도 아이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점점 마디가 굵어지면서, 피부가 갈라지고 진물이 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독한 염색약을 쓰면서도 장갑을 끼지 말라는 바람에 맨손으로 하연약한 피부에 독이 올라 정상이 아니었다. 간신히 시간을 내어 피부과를 더니 절대로 물을 묻히면 안 된다고 했지만 매일 샴푸를 해야 하는 처지라 여전히 손은 갈라지고 피가 났다. 부모의 무지로 인해 아이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혹사시킨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해서 아직도 가슴이 저려온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피폐해진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하루가 한 달 같았을 그 힘듦 속에서 2년 간이나 텨냈으니 더욱 속이 쓰린다. '나갈 테면 위약금 물어내'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다 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세상에 둘도 없이 친절한 태도를 보였던 대표는 위약금을 안 낼 경우 고소한다면서 상스러운 욕 문자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심한 욕과 악담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는 지금 다시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 곧장 갈 길을 빙 둘러 가느라 몇 년을 허송세월했지만 결코 헛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연약했던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는 토대가 되었기에 오히려 값진 경험이라 위안고 싶다. 앞으로 우리 딸아이한테 이보다 더 큰 아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미용실에서 있었던 사건'을 생각하면 그 어떤 어려움도 당당하게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픔을 넘어서' 희망이 되기까지 딸아이도 언제나 자신감을 잃지 않고 굳건히 잘 지내기를 빌고 또 빌었다. 인의 강의가 끝났을 때 나는 힘껏 박수를 쳤다. 아픔을 딛고 다시 일에나 묵묵히 제길을 가고 있는 장한 내 딸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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