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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Sep 26. 2023

본집 가서는 잘 살아야지

(엄마의 시 3) 

본집 가서는 잘 살아야지


닭은커녕 

벌레 한 마리도

안 잡으며 

착하게만 살아은 아버지


무슨 죄가 그리 많아

가는 마당에도

밥 한 술 뜨지 못하고

황급히 떠나갈까               


그까짓 집은 있어 뭐혀

한 번 와 보지도 못한 걸

그까짓 돈은 있어 뭐혀

한 번 써 보지도 못한 걸


아무렴

본집 가서는 잘 살아야지.




아버지는 '아흔'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병마에 무릎을 꿇고 천상으로 떠나셨다. 아버지를 살려내기 위한 갖은 노력이 물거품으로 흩어졌다. 우리는 깊은 슬픔에 빠져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가슴에 맺힌 원통함을 안고 떠나는 길에 아버지의 얼굴빛은 왜 그리도 맑고 깨끗했던지.


7개월 남짓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좋아지는 듯하다가는 중환자실까지 가는 시련을 겪었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냈지만 마지막 몇 개월은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오로지 짧은 호흡으로 쌕쌕 소리를 내는 것과 눈을 꿈벅거리는 일이었다. 응급상황시에 급하게 매달린 용량이 큰 산소호흡기에도 불구하고 숨이 가늘어졌다. 실낱같은 희망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감각기관의 기능이 멈춰지면서 힘겨운 숨만 헐떡이는 아버지를 향한 엄마의 울먹거림은 멈출 수가 없었다. 마지막 소통이라도 하고픈 열망은 입에서 쉴 새 없는 중얼거림을 만들어냈지만 소용없었다. 진심에서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맑고도 깨끗한 이슬 같은 시가 샘솟았지만 아버지는 듣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거느린 식구가 많아 사글셋방에서 수모를 겪던 부모님의 목표는 오로지 내 집 갖기였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전세로 승급할 때까지 못 먹고, 못 입는 생활이 완전하게 정착되었을 터다. 다섯 자식 교육은 시켜가면서 설움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해야 했다. 자신을 위해 돌아볼 엄두는 아예 내지 못하고,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셨다. 마침내 집을 마련해 놓고 나서야 발 쭉 뻗고 주무셨을 걸 생각하면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렇게 장만한 집을 놔두고 엉뚱하게도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송구할 따름이다.   


삶의 끄트머리는 그토록 갈구하던 편안한 내 집에 있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하지만 집은 얼씬도 못한 채, 종합병원에서 추천해 준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소변줄을 끼웠고, 목에는 기관지 삽관에, 콧줄까지 하셨으니 종합병원의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입원 중에 받던 처치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의사의 강력한 추천으로. 수많은 의료 기구를 주렁주렁 몸에 단 채 입원했고, 그날부터 나락의 길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요양병원. 날이 갈수록 나아지는 기미는 하나 없이 점점 스러져가는 모습만 볼 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 가는 일이었다. 위급해진 뒤에야 아버지를 집으로 모실 수 없냐고 졸라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집으로 모실 경우, 병원으로서 난처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원장은 딱 잘라 말했다.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기도나 열심히 하라."는 말로 생존 가망성을 일축시켰다.


우리 가족은 때늦은 후회를 했다.

'애초에 재활병원을 거절하고 그냥 집으로 모셨더라면 편하기라도 했을 텐데.'

집으로 오시나 병원에 계시나 소생 가망성은 희박했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백번 옳지 않은가. 한번 입원했다고 해서 집으로 가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을 막고 가둘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내가 나가겠다고 하는데 왜 그리 절차가 복잡하고, 걸리는 부분이 많은지. 형편없는 모습으로 늘어져 거의 눈을 감고 있는 요양병원의 수많은 노인들을 둘러보니 한숨이 나왔다. 

'과연 죽어야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엄마는 어떻게 '본집'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었을까. 

누구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그곳이 바로 본집이 아니더냐. 부자건, 가난하건, 배웠던 못 배웠던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곳이다. 언제 갈지, 어떻게 갈지는 아무 예측할 수 없지만 한 번은 무조건 가야 할 곳이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공간이 바로 본집이다.  


엄마는 언제나 '잠을 자듯 편안하게 본집으로 가고 싶다'는 소원을 가슴에 품고 있다. 물론 아버지도 '잠자듯이 가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여겼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불가에서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많이 외우면 그 바람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엄마가 본집으로 떠날 때는 제발 편안한 모습으로 잠을 자듯 눈을 감았으면 한다. 그날이 아주 천천히 오기를 바라면서 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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