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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Oct 22. 2023

천상에 가거들랑

( 엄마의 시 5)

천상에 가거들랑


이승에서

공덕은 못 닦았어도

남에게

해코지한 적은 없어


천상에 가거들랑

부잣집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여자 만나

부디 잘 사시기를 비옵니다.




상조회사에서 나온 팀장이 모든 절차를 알려주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어서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문상객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길을 잡기 위해 장례식장을 알아본 뒤, 친척들한테 부고장을 보냈다. 


올해로 결혼한 지 67년째를 맞는 엄마와 아버지. 평생을 의지하며 지내온 아버지가 코로나로 갑자기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조금 더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게 인생이다. 엄마는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을 참아내느라 매일 눈물바람이다. 배우자를 잃었을 때의 슬픔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스트레스 종류 중 최고 수치를 나타낸다는 과학적 통계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스트레스를 10으로 보았을 경우, 9 이상의 높은 지수를 보인다고 니 가히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다.


부모님의 지난 시절을 되짚어보자면 가난으로 점철된 고통과 힘겨움의 연속된 삶이었다. 결혼한 순간부터 없는 살림으로 시작하여 알뜰살뜰히 살림하느라 온갖 고생 두루 겪으며 삶을 꾸려왔다. 다섯 자식 뒷바라지에 정성을 쏟아붓느라 애초부터 부모님의 인생은 아예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힘겨운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두 분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로 옆에 있었기에 지탱할 수 있었다. 지난날의 고통이 아무리 어려웠어도 배우자를 잃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노라 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


눈을 감은 아버지를 자꾸만 쓰다듬으면서 그 여자는 중얼거렸다. 살아생전에 지은 죄 없이 눈 감으면, 천상에서는 부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날 수 있다고.  '눈에 띄는 공덕은 못 닦았어도 남에게 해코지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인간으로 환생하면 잘 살 수 있어요. 부디 잘 가시오.'

아버지를 보내는 편지를 미리 써 두기라고 한 듯, 입으로 술술 낭송을 하기 시작했다.

'이승에서 못 누린 행복 부잣집에서 다시 태어나 누리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했다. 이승에서 착하게 살면 천상에 가서도 부잣집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 엄마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그때는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라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실 거라는 희망은 모두 헛된 바람이 됐다. 이제 조금만 치료하면 입으로 잡수실 거라는 소망이 헛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천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극락왕생을 읊으며 조용히 눈물 흘리는 일밖에는. 엄마는 67년 함께한 남편을 보내는 심정을 눈물로 표현했다.  


엄마가 시로 표현했듯 아버지는 남에게 큰 소리 한번 치지 않았던 분이다. 아무리 빚쟁이가 돈을 주지 않아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엄마를 앞세우고 다닌 것은 본인보다 엄마가 씩씩하게 말을 잘했기 때문이다. 엄마도 혼자가 아닌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오셨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 혼자서 살아가셔야 한다.


엄마는 짝이 없는 홀몸이 되었다. 한 쌍으로 있다가 짝이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엄마는 아기자기하게 남편을 받들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더러 자꾸 말씀하신다.

"너희는 오손도손 재미있게 잘 살거라."


엄마의 중얼거림을 혹시 듣는다면 아버지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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