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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Oct 22. 2023

빈 손으로 가는 길

(엄마의 시 6)

빈 손으로 가는 길


먹을 수가 있나

볼 수가 있나

한 마디 말을 할 수가 있나

그저 자는 듯 눈만 감고

무슨 미련 있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는고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길

뭐 그리 미련이 많다고

안간힘 써가면서

두 손 놓지 못하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고. 



오늘은 면회 가는 날이다. 딱 일주일 만이다. 코로나가 심각했을 당시에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만났다니 생이별이 따로 없다. 그마저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얼굴이나 고작 확인하는 정도였으니 이산가족 상봉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면회를 할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운동해야 집으로 모실 수 있어요."


혼자 힘으로는 절대 들어 올리지 못하는 다리를 연신 주물러 드리면서 우리는 자꾸만 운동을 강요했다. 아버지는 척수염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코로나 감염으로 중환자실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다 왔다. 열흘 간 중환자실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치료를 받다가 기적 같이 깨어났다. 아흔 연세에 강인한 정신력으로 끝까지 버텨내어 의료진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기다리던 재활치료가 시작되었지만 욕창이라는 복병을 만나 치료가 중단되어 재활이 점점 늦어졌다. 한시가 급한데 마음만 초조하지, 그저 누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입원할 때는 멀쩡하게 들어갔던 아버지가 온몸에 관과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불쌍한 환자가 되었다. 기관지 삽관으로 인해 콧줄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어느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억울한 상황에 처했다. 그렇게 종합병원에서 4개월을 허송세월하다가 요양병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집으로 모셔야 한다는 자식들 말을 무시한 의사의 말을 듣고 온 재활병원. 그때까지만 해도 한두 달 치료를 받으면 다시 씩씩하게 걸어서 집으로 오실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재활병원이라는 곳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곳,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사람들은 흔히 죽어야 나올 수 있는 곳이 요양병원이라고 하는데 너무 심한 걸까.


아버지가 누워있는 병실에는 모든 환자가 비슷한 증세를 가졌다. 축 늘어진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이 병실마다 가득했다. 하루종일 누워 있는 환자들은 갈 때마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깔끔한 얼굴과 두 눈 가득 총기가 있어 안타까웠다. 면회를 자주 가다 보니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뼈만 남은 비슷한 환자들이 모두가 같은 시간 대에 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선족 간병사는 합동으로 기저귀 갈아주는 시간을 기다리며 핸드폰에 눈을 박고 딴청을 부렸다. 2시간마다 체위를 변경시켜 주라는 종이 울려야 합동으로 기저귀를 갈아준다는 것도 알았다. 

 

재활병원에 들어갈 때는, 온몸에 희망이 넘쳐흘렀지만 면회가 거듭될수록 실망스러웠다. 기력이 점점 쇄약 해진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한 방에 6~7명의 환자가 있으니 어떤 병에 감염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 우려대로 세균에 감염되어 격리되기를 몇 번 반복하니 재활은커녕 그동안 잘해오던 면회까지 금지되었다.

코로나 감염을 두 번이나 겪고 보니 점점 체력은 떨어지고 급기야 콧줄로 공급하던 영양죽마저 중단되었다.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팔뚝에 영양제를 똑똑 떨어뜨려 줄 뿐이었다. 연명치료에 들어간 것이다.


엄마는 거의 숨만 쉬고 있는 아버지의 두 손을 어루만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범벅으로 쏟아지는 시가 엄마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엄마의 처절함이 묻어난다. 아무런 가망도 없이 겨우 숨만 부지하고 있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침통해했다. 세상이 다 허망하다면서 이렇게 될 것을 왜 쓸데없이 고생만 시켰면서 허공에 대고 원망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나는 길이 왜 이리 힘든가. 어차피 빈 손으로 갈 텐데 왜 그리 옹졸하게 살아왔는지 회심스러움이 잘 나타나 있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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