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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Aug 16. 2023

당신은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

강화 장날에 만든 추억 하나

  강화 장이 서는 날, 엄마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딱히 사야 할 것은 없었지만 엄마와 나들이를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국물멸치는 강화 것이 맛있다는 게 유일한 핑곗거리였다. 가쁜 숨으로 느린 걸음을 옮겨놓는  엄마는 표정만큼은 아이처럼 해맑았다. 손마디가 굵은 커다란 손을 맞잡고 걷는 내 마음도 마냥 좋았다.


그동안 직장생활에 쫓겨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는 데 인색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동생네를 따라 엄마와 추억을 몇 번 만들어본 게 고작이다. 앞으로 추억 쌓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던 순간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틈이 날 때마다 하나라도 더 추억을 긁어모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어났다.


엄마는 언제나 딸의 입장을 살피며 걱정이 많다.

“너, 시간 있어? 네 일도 바쁠 텐데. 우리는 걱정하지 마.”

팔순을 넘긴 연세에도 늘 자식 편에서 생각하고, 되도록 자식한테 신세를 안 지려고 궁리를 한다.

“너, 돈 있어? 너도 돈 없을 텐데. 우리 걱정은 하지 마.”

용돈을 드려도 굳이 마다하며 오로지 자식 걱정을 우선으로 삼는다. 지금껏 엄마 자신만을 위한 삶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언제나 마음씀이 너그럽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욕심이 더 생기고, 없던 고집과 아집도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불리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포용력이 깊다. 어떤 모임에서든지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 주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당신도 늙었는데 노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먹을 것을 양보하니 어느 누가 싫다 하랴.


철이 없을 때는 내 입보다는 식구 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엄마가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을 굶은 이웃에게 밥그릇을 선뜻 내주는 엄마가 보기도 싫었다. 자신을 희생하며 욕심 없이 사는 엄마를 볼 때마다 늘 속상함이 앞섰다. 하지만 베풀며 사는 인생이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알게 된 지금은 엄마가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강화장에 도착했다. 소녀 감성이 된 엄마는 이내 신기한 눈으로 이것저것 마음껏 둘러본다. 건어물 가게에서 멸치와 미역을 사고, 옷가게를 기웃거렸다. 눈치 빠른 엄마가 이내 나를 잡아끈다.

  "노인네가 무슨 옷이 필요하다니?" 라며 눈을 흘긴다.


얼마 전에 엄마한테 옷을 사드렸는데 쓸데없는 짓 한다며 호통을 들었다. 끝까지 입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옷을 환불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필요 없는 물건을 굳이 몸에 걸치거나 쌓아두려고 아등바등 욕심내지 않는 건 엄마 단점이자 장점이다.


장터를 한 바퀴 둘러보다가 어릴 적 외할머니 손을 잡고 다녔던 읍내 장터가 생각났다. 5일마다 서는 장 구경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손꼽아 기다리던 장날, 발걸음은 새처럼 가벼워 신작로 위를 두둥실 떠가는 듯했다. 할머니 손을 잡고 10리나 되는 먼 길을 칭얼대지도 않고 걸어갔다. 거리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인 아주머니와 지게에 자루를 짊어진 아저씨들로 대행렬을 이뤘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이는 너른 호수의 물결은 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도록 반짝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용왕 부인이 된 심청이가 용궁잔치라도 벌인 걸까?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언제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을 죄다 그 잔치에 불러 모으려는 듯했다. 걸음이 빠른 아저씨를 보면 딸을 만나고 싶어 걸음을 재촉하는 심 봉사 같기도 하고, 머리에 보따리를 얹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걷는 아주머니는 뺑덕 어미처럼 보였으니.


읍내의 장터 입구에는 약장수들이 뱀을 가지고 묘기를 부리며 사람들의 혼을 빼앗았다. 장날 구경거리로 안성맞춤이어 늘 사람들로 붐볐다. 각설이 타령을 하며 울릉도 호박엿을 파는 아저씨의 옷차림도 재미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양지바른 한쪽에서는 가마니를 펼쳐놓고 윷놀이를 하며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포장마차에서 기름내를 풍기며 노릇노릇 구워진 호떡은 가던 발걸음을 되돌리게 하는 천하제일의 주전부리였다.


외할아버지는 이날, 고단한 농부의 한을 막걸리로 풀면서 맘껏 기분을 내셨다. 찬거리도 일찌감치 사놨겠다 동네 아는 분들과 약주를 하면서 잔칫날처럼 즐겼다. 할머니는 콩과 바꾼 돈으로 고등어와 집안 대소사에 쓸 여러 가지 물건들을 샀다. 내 몫으로 명절에 입을 원피스를 하나 산 뒤, 맛있는 호떡도 덤으로 사주었다.


장터 입구부터 죽 늘어선 난전에 아주머니들 앉아 물건을 팔던 모습도 생각난다. 산자를 파는 아주머니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며 손에 산자를 쥐어주었다.

“약국 집 외손녀 왔구먼!”

곶감을 팔고 있던 아주머니도 내 입에 곶감을 넣어주면서 친근하게 다가왔다.  

“방학이라 왔구먼 그려.”

강화도 난전에 머릿수건을 쓰고 앉아 생선을 매만지는 아주머니들을 보니 어릴 적 장날 모습또렷하다.




엄마와 다녀온 강화 장 구경이 또 하나의 추억으로 책갈피에 끼워졌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담아두고 싶다. 다시 못 올 세계로 긴 여행을 떠나셨을 때, 추억을 하나둘 꺼내면서 엄마를 이승으로 소환하고 싶다. 엄마의 따스한 숨결과 인자한 미소를 다시 만날 때마다 나지막이 소리 내고 싶다.


"당신은 참 좋은 엄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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