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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Aug 25. 2023

이 세상, 두루뭉술 살아가려면

가족에 대한 편협된 생각을 멈추자

  미장원에서 멀뚱히 앉아 남의 손에 머리를 맡기는 것은 따분한 일이다. 나한테 어울리는 머리 모양은 내 손으로 만지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 단, 개성 있는 머리 스타일에 대해 참견하는 사람만 없다면 말이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길면 볼썽사나우니 짧게 잘라버리라는 핀잔을 자주 듣곤 한다. 한두 번도 아닌 그 잔소리가 듣기 싫어 오늘은 결국 여론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이른 아침부터 미장원은 만석이었다. 예약을 안 한 나는 당연히 맨 꼴찌 순서다. 멋을 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꼬불꼬불 머리를 만 사람은 TV를 보고 있고, 분홍색 수건을 둘러쓴 여자는 여유를 부리며 잡지를 들춰본다. 염색약을 바르고 비닐로 칭칭 감아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안 가는 사람도 있다. 역시 머리털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다.


무릎을 바짝 붙이고 제집 안방처럼 편하게 앉아 수다를 떠는 여자들 옆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아이 키우는 평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다.   

“우리 애는 아직 똥오줌을 가리지 못해서 죽겠어요.”

“그래? 우리 막내는 아주 잘 가리는데.”

“언니는 좋겠다.”

동생 되는 여자는 한없이 부럽다는 말투였다.

“게다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응가를 하지 뭐야?”

언니 되는 여자가 자랑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나, 가을이는 정말 신통방통하네요.”

도대체 몇 살이나 된 아이길래 철이 바짝 든 것일까. 어느 누구라도 부러워할 법한 자식이 아닌가.

“남자들만 사는 집에 여자애라 얼마나 귀염을 받는지 몰라.”

“진즉에 데려올 걸 그랬네요.”

어디에서 여자애를 데려왔다는 말일까? 자못 궁금해졌다.


“얘는 밖에 외출할 때도 참 신기하단 말이지.”

“왜?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TV에서 들리는 노랫소리가 갑자기 귀에 거슬려 청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했다.

“평소에는 왈가닥인 아이가 남자들 앞에만 가면 얌전한 척하거든.”

이번에는 수건을 뒤집어쓴 나이 많은 여자도 궁금해서 못 살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와! 고것이 앙큼 맞기도 하네.”

애교도 많고 여우짓도 잘하는 아이인 게 분명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처지를 잠시 잊은 채 머릿속에 흥미진진한 상상력만 가득 채워졌다. 흘러가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빠들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오줌까지 지리지 뭐야?”

갑자기 듣기 민망스러워졌지만 이제 와서 귀를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만 할 뿐.


"그런데 가을이를 입양 보낸다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이에요?”

“혼자 셋을 키우기가 좀 버거워서…”

아이 하나 양육하는 데 드는 돈이 만만치 않다며 말끝을 흐리는 언니였다. 순간,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아무리 살기가 팍팍하기로서니 제 자식 입양 보낼 생각을 저리도 쉽게 할 수 있다니 기가 막혔다.

“우리 집 식구들은 예뻐할 줄만 알았지, 애 돌보는 일에는 잼병이라구.”

“맞아요. 뒤치닥은 모두 내 몫이라니까요.”

요즘 사회적으로 영유아를 대하는 부모의 그릇된 사고가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일부 몰지각한 부모들 애기지만 동네 미장원까지 파고들 줄은 정말 몰랐다. 더 놀라운 건 동생이라는 여자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거다.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같은 류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실 얼마 전에 입양 부모가 나타났어.”

“어머나, 어떤 가정인데요?”

“아저씨는 사업가이고, 안주인은 선생인데 고생은 안 시킬 집이야.”

“그럼 누굴 보내려고요?”

“글쎄, 고민 중인데 아마 가을이가 되겠지?”

“식구들이 다 좋아하는 그 애를 보낸다구요?”

“아직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어.”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공연히 마른 코를 훌쩍거리는 언니가 가식적으로 보였다.

“위로 남자애들 중에서 보내면 어때요?”

생긴 건 멀쩡한 사람이 자식 버리는 대화를 스스럼없이 펼치다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집에 자폐증 아들이 얼마 전에 놀러 왔다가 우리 막내를 봤지 뭐야?”

“어머머,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딱 한 번 봤을 뿐인데, 첫눈에 반해서는 매일 부모를 조른다는 거야.”

“그런 집으로 가면 복이긴 하죠.”

“아무렴. 애지중지 잘 보살펴 줄 테지 뭐.”


나는 하마터면 자식을 왜 함부로 버리는거냐며 버럭 화를 낼 뻔했다. 남이 달란다고 강아지도 아닌 내 자식을 덥석 내줄 수 있는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벌겋게 열받은 속을 가까스로 식히고 있을 때였다.

언니라는 여자가 호들갑스럽게 벌떡 일어섰다.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깜빡했네. 오늘 가을이 병원 가는 날인데.”

거울에 비친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후다닥 뛰쳐나갔다. 미장원이 떠나갈 듯 외치던 큰소리만 미장원에 남겨놓고.

“광견병 예방접종!”


맥이 탁 풀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강아지 얘긴지, 사람 얘긴지 분간 못한 내가 분별없는 건가? 아니면 강아지와 사람을 분간 없이 얘기하는 사람이 분별없는 건가. '자식을 낳기보다 강아지를 기르며 살겠다는 이가 점점 늘어난다.'는 신문 기사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찰나였다.


'강아지는 절대 가족이 될 수 없어. 그저 애완동물일 뿐이야. '

라고 말하는 내게 얼마나 많은 핀잔이 쏟아질지 두려워진다. 부스스한 내 머리스타일에 대한 참견을 넘어서 어쩌면 미개인 취급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안으면 뭉클하는 그 감촉이 느끼해서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날더러 어떻게 하라고. 강아지만 보면 자동적으로 움찔하는 날더러 어떻게 살라고.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미용사는 인정사정없이 긴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버린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세상을 두루뭉술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우선 가족에 대한 편협된 시각부터 훌훌 벗어던져야겠다.

'오늘부터는 세상의 모든 강아지를 사랑할 야.'

그때였다. 온몸으로 스멀스멀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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