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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Dec 09. 2023

나쁜 선생이 왔네

2학년 교실에서

2학년 교실에 들어갔더니 26명의 어린이가 앉아 있다.

아이들 앉은 자세 눈망울을 보면서 오늘 수업 진행은 힘들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1교시는 수학시간으로 공부할 문제는 '하루의 시간을 알아보자.'이다. 오전 12시간과 오후 12시간을 합해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아이들 대부분이 이미 다 알고 있어 시시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수학책에 나온 문제를 설명해주고 난 뒤, 학습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알아보는 수학익힘책을 펴라고 했다. 숫자를 제대로 쓰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 칠판에 3자와 6자를 정자로 반듯하게 써주었다.

"글자는 바르게 쓰는 습관이 중요해요. 우리가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이유랑 똑같아요."


그 순간, 아이들이 술렁대기 시작하더니 한 아이가 큰 소리로 말다.

"왜 바르게 써야 해요?"

칠판에 숫자를 엉터리  놓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쓰면 정확하게 알아볼 수가 없어서 틀렸다고 할 수도 있요."


그때부터 아이들이 불만을 터뜨리며 소리러댔다. 왜 틀리는 거냐며 계속 말꼬리를 잡고 늘어긴도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데모 부대에 흠칫 움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완전 내 실수다. 국어시간도 아닌 수학 시간에 바른 글자를 운운하다니 내 잘못이 아니고 무어랴. '바른 글씨 쓰기'를 주창하는 나의 철칙을 겨우 하루 만나는 아이들한테 적용하려 들다니 욕심이 지나쳤다.


'신. 언. 서. 판'을 중요시 여겼던 조선시대 유교정신이 꽉 들어차 있는 나의 과욕이 빚은 현상이었다. AI인공지능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글자 모양을 따지냐고 대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당황하는 모습을 얼른 감추고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공부 잘하게 된다'라는 말로 구슬려 보았다.

"글씨를 바르게 잘 써야지, 정신 집중이 되어 공부도 잘할 수 있게 되지요."


아이들의 반응은 더욱 거세졌다. 그런 얄팍한 속임수에 절대 안 넘어가겠다는 기세로 여기저기서 떼창으로 덤빈다.

"우리 아빠는 글씨 되게 못 쓰는데 수학을 엄청 잘하거든요?"

"맞아요. 우리 엄마도요."

"선생님은 참 이상해요."

여기저기서 드는 반기에 무력감을 느끼며 입방정 떤 내 입을 때려주고 싶었다. 아무 말하지 말고 안전하게 수업이나 하고 가되는 강사 주제에 담임처럼 아이들의 기본을 잡아주려고 입을 나불댔으니. 이 일을 어찌 수습한단 말인가.


마음속으로는 '그래, 너희들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싶었지만 내가 누구인가. 전직 교사로서 나도 고집이 있는 터, 돌아다니며 바르게 글씨 쓴 아이들을 큰 소리로 칭찬하다가 움찔했다.

이크, 이것도 안 되는 일이지. 여럿 있을 때 한 사람만 칭찬하면 칭찬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대적 박탈감 내지는 정서적 불안감을 가진다고 하지 않나. 정서학대 강사라는 딱지라도 붙이고 싶은 거야? 왜 자꾸만 오지랖 넓게 끼어드는데? 강사여! 제발 그 입 좀 꾹 다물고 있으라.


쉬는 시간이다. 대부분 여자 아이들은 모여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가게 놀이를 하면서 차분하게 논다. 그에 비해 남자아이들은 저학년 고학년 할 것 없이 몸을 가지고 아주 단순하게 논다. 서로 몸을 밀치거나 장난으로 때리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보면 좁은 교실 안이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폭력 사건도 쉬는 시간에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교사들은 쉬는 시간까지 눈을 부릅뜨고 아이들을 살펴야 한다. 더군다나 강사의 입장에서 볼 때 사고가 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사전 예방이 최고라서 나는 또 입을 나불대고 말았다.


"얘들아, 쉬는 시간에는 돌아다니지 말고 앉아서 놀아요. 친구들 몸을 만지지 말고 절대로 뛰어다녀서는 안 돼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자아이들 몇 명이 또 말꼬리를 붙잡는다.

"쉬는 시간인데 왜 안 돼요?"

"몸이 닿으면 왜 안 돼죠?"

"몸을 안 만지면 어떻게 놀아요?"

마치 남의 몸을 만져야만 노는 게 성립된다는 듯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다. 급기야 뒤쪽에 앉은 곱슬머리에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한테서 "되게 나쁜 선생이 왔네."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입방정으로 인해 순식간에 나는 나쁜 선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너는 담임교사가 아닌, 하루 강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수업을 마치는 단계에서 박수 게임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만화에 학습 만화가 있듯, 게임에도 학습 게임이 있는 법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고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놀이학습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학급 운영다. 자타 공인 '게임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내가 손 유희 게임의 위력으로나마 아이들의 시선을 하나로 모으겠다는 포부가 생겼다. 하지만 나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과대망상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박자에 맞춰 손뼉을 짝짝 잘 치며 따라 하는 아이들 속에 몇몇 아이들은 일부러 엇박자로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아까 반기를 들었던 그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 분위기를 흐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끝종이 울렸기에 더 이상 나무랄 수 없었다. 하소연한다고 제대로 할 것도 아니고, 애걸해 봤자 나쁜 선생이라는 이미지만 더욱 강하게 입력될 것 같아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2학년 때는 습을 고칠 수 있어요. 3학년 가서 고치려면 이미 늦어요."

쉬는 시간에 누가 귀담아 듣는다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들의 버릇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끊임없는 수업 방해 속에서도 묵묵히 참아내느라 슬픈 눈망울만 굴리고 있는 가엾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처음에는 한 명으로 시작된 훼방꾼을 그냥 놔두면 바이러스처럼 점점 퍼져나가 다수의 훼방꾼이 교실에 양산된다. 어릴수록 나쁜 것은 쉽게 물들기 때문이다. 다수의 죄 없는 아이들 고스란히 피해를 받게 되는 현실을 종종 보는 터라 안타까운 심정이 좀체 사그라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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