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선여인 Feb 08. 2023

쉿! 비밀입니다

어리석음을 고백하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오래간만에 외출하려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차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위층으로 올라가 봤으나 마찬가지다.

  “지하 1층에 세워둔 게 분명한데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주차장 구석구석을 다시 뒤져봐도 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발이 없으니 혼자 갔을 리는 없고, 누가 끌고 갔다는 건데 도대체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남편은 그런 허름한 차를 누가 가져가겠냐며 놔둔 곳을 잘 생각해 보라고 계속 채근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하에 세워둔 기억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식구들이 총출동하여 지하는 물론, 바깥까지 다시 샅샅이 훑어봤다. 역시 헛수고였다. 결국 도난 쪽으로 가닥을 잡고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도난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크기도 작거니와 연식이 오래된 차를 왜 표적으로 삼았냐는 거다. 크고 좋은 차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오죽잖은 내 차였을까. 번쩍번쩍 빛이 나는 차를 놔두고 왜 고물차가 낙점되었는지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생각에 빠져 곰곰이 머리를 굴리고 있던 순간, 며칠 전의 뉴스가 떠올랐다. 남의 차를 훔쳐 나쁜 일에 이용한 뒤 내다 버린 범인이 검거됐다는 기사였다. 범죄에 이용한다 치면 허름한 차가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내 차가 표적이 된 걸까?”

  돌아가는 상황이 이쯤 되자 차가 없어진 것보다 범죄에 연루되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도난 차량을 신고 안 하고 방치하면 벌금을 문다는 얘기까지 들은 적이 있어 겁이 덜컥 났다.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하여 가까운 친척 중의 형사에게 연락을 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바로 오늘 아침에 도난당했다는 사실도 빼놓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불가사의한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났을까?”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으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식구들도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를 든 손이 후들거렸다.

  “여보세요? 서울 1 너에 93** 차주인 되십니까?”

  젊은 남자는 정중하게 말했다. 왠지 범인 같지는 않았으나 내 목소리는 초긴장감으로 떨렸다.  

  “그, 그 차를 도난당해서 지, 지금 난리가 났는데 어디서 발견했나요?”

  정신이 나갈 정도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상대편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물었다.

  “뭐라고요? 도난이라고요?”

  벌금을 내게 될지도 몰라서 오늘이라는 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네, 바로 오늘 아침에 도난당한 것이 분명해요.”

  남자는 내 말을 비웃듯이 가로막았다.

  “여보세요! 여기는 마트입니다.”

  ‘마트’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전에 차를 주차하지 않으셨나요?”

  

  일주일 전, 연말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동네 마트에 갔었다. 옥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물건을 잔뜩 사서 나와보니 주차장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잠깐 사이 내린 집중 폭설로 사람과 차들이 꼼짝을 못 하고 있었다. 차를 빼기도 어렵지만 운행이 불가능하여 우선 물건만 낑낑대며 들고 온 게 화근이었다. 그 후로는 외출할 일이 없어 완전히 차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일주일이 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겨우 어렵게 연락이 닿은 것이라 했다. 주차 요원은 일주일치 주차비를 꼭 물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나는 슬그머니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눈치를 살폈다. 옆에서 식구들이 배를 움켜쥐고 웃느라 야단이 났다.

  “그럼 그렇지, 누가 그런 똥차를 가져가겠어?”

  식구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막 달려갔다. 1주일 치의 주차비 십사만 원을 한 푼도 깎지도 않고 온전히 지불했다. 범죄에 이용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며 속을 달랬다. 하지만 우울한 기분은 쉬 가시지 않았다.


  얼마 전 모임에 깜박 잊고 나오지 않은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하지 않았던 죗값인가. 물건을 잘 잃어버려 식구들에게 핀잔을 듣는다고 했을 때도 공감하지 못했다. 그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무심하게 흘려들었을 뿐이다. 나는 얼굴과 옷차림을 잘 기억하여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잘 생각해 내는 편이다. 적는 것보다 오히려 머릿속에 저장하는 게 편하다. 아직은 기억력이 나쁘지 않다고 우쭐댔던 것 같다.




  세월의 흐름을 누군들 비껴갈 수 있으랴. 이제부터 나도 시작인걸.

  ‘건망증은 때로 무미건조한 우리 삶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

  은근슬쩍 자기 합리화를 해보지만 야속한 기분은 가시 않는다.  나에게 일어난 이 최대 건망증으로  한동안 나는 부끄러웠다. 평생 비밀로 숨겨두고자 했다.


  늦게나마 이렇게 털어놓고자 하는 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을 비껴가려 한 나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월에 삐치려는 내 마음을 다독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왕족으로 다시 태어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