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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목욕예찬 08화

음료수, 그리고 어른과 어린이

찜질방보다는 음료수 이야기

by 윤문

계란과 식혜는 찜질방에서 자주 먹게 되는 조합이다. 나름 음료를 얼박사나 냉커피로 바꾸는 등의 변주가 가능하지만 나는 오리지널의 계란과 식혜를 매번 먹는다. 찜질방에서 땀 흘리고 시원한 걸 벌컥벌컥 마시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서 얼박사는 얼음 + 박카스 + 사이다를 섞은 음료를 말한다. 나도 말로만 들어보고 먹어보지는 못했다. 박카스도 디카페인으로 먹는데, 그냥 박카스를 넣은 얼박사를 먹을 수 있을 리가.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얼박사나 커피는 카페인이 들어 있어 엄마와 아빠가 못 먹게 하시니까. 물론 이유가 있다는 건 알지만, 엄마가 찜질방에서 먹던 얼박사나 커피가 매번 부러웠다. 어른이라는 상징 같았고 왠지 멋져 보였다. 나도 기회가 되면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나는 어느덧 중2가 되었다.


내가 중2 되던 해에 엄마 몰래 음료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각각 박카스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골라서 마셨다. 물론 이 글이 올라가면 엄마가 볼 테니까 이제 몰래가 아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둘 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이었다. 박카스는 그런대로 맛있었지만 커피는 쓴맛과 카페인에 놀라서 찔끔 먹고 남겼다. 못 먹게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어른 흉내 내다가 큰코다친 느낌?

그런데, 어른들은 어린이를 부러워하는데, 어린이는(나처럼) 어른을 부러워하며 흉내를 낸다.



서로가 가지지 못한 걸 가져서인 것 같다. 어린이의 보호, 어른의 자유. 물론 뭐가 더 좋은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둘 중 하나만 가질 수 있고, 늘 우리가 가지지 못한 걸 부러워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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