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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정연 Jan 09. 2019

사페르 베데레

“이번 시험을 너무나 못 봤어! 문제를 왜 이리 어렵게 출제하는 거야!”

“이번 시험은 나름 아쉬웠지만, 서술형 전치사 문제에서 실수하지 말아야겠어.”

전자와 후자 중에 발전 가능성은 누구에게 있을까? 당연히 후자다. 똑같은 결과를 두고 그 실수를 어떻게 보는지 다르다. 공무원 수험생들 상담은 시험 직후에 연락이 많이 온다. 어떤 수험생은 술을 진탕 마시고 ‘어차피 안될 인생이니 술이라도 먹고 죽자.’라는 타입도 입고, 반면에 ‘어떤 과목에서 점수가 부족했고 왜 틀렸는지 쓰디쓴 마음’으로 와신상담하면서 내년 시험을 차분히 준비한다.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다.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 있는 관점, 1등급과 5등급의 보는 관점은 남들이 보는 차이가 아닌 자신이 보는 관점의 차이다.

사페르 베데레!

역사상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의 비결은 무엇일까? 다빈치는 이런 물음에 ‘사페르 베데레’라고 응했다. 뜻은 ‘어떻게 보는지를 아는 것’이란 것이다. 다빈치가 처음부터 뛰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우리처럼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겪지 않고서는 4년이 걸리고도 미완성인 채로 끝나버린 ‘모나리자 미소’를 보는 사람들에게 신비성과 묘한 감정을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현재 17점만 그의 작품으로 여겨지고, 그중 몇 가지는 심지어 미완성이다. 그래도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번에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아서 속상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반면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를 다듬어 결국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학생들은 그런 말조차 꺼내지도 않는다. 자신이 열심히 안 한 상태에서 나온 결과는 무의미하기에 관점이란 것도 무의미하다. ‘관점’이란 특정한 사고방식이며, 이해하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견해다. 그런데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자신의 견해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상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의미 있는 관점이 생긴다. 자신이 외부인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종종 자신의 실패를 겪어본 학생들은 거의 자신의 불찰이라기보다는 환경을 탓하며 자신을 멀리 떨어진 외부인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환경이 아닌 자신에게 관점을 돌려야 한다.

관점을 자신에게 돌리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할까?

실패가 반복되어 자기도 모르게 습관화되고 있는지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매일의 하루가 반복되어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진다.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익숙해지면 좋지만, 실패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새 자신의 관점도 실패만 보는 습관이 자리 잡게 된다. ‘어떻게 보는지를 아는 것’은 그 실패에서 벗어날 방법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이용할지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1905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시간, 공간, 물질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을 발표했을 때 물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그때 아인슈타인은 학계에서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위스 특허청에서 일하고 있었다. 연구소와 동떨어진 환경에서 일해서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에서 바라보는 정해진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의문을 풀어나갔다.

아인슈타인이 다른 관점에서 보며 계속 연구를 진행하였던 것처럼, 우리 역시 실패를 낙관적으로 보고, 발전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일본 아오모리의 사과는 최상급으로 평가를 받는다. 단맛과 신맛의 적절한 조화가 어우러져 많은 사람이 찾는다. 더구나 일본 사과 생산 약 50%를 아오모리에서 생산한다. 그런데 일본에 잦은 태풍이 불기는 하지만 1991년도에 아주 기록적인 태풍이 불어온다. 설상가상으로 사과를 수확하는 시기였는데, 수확을 앞둔 사과들은 익었기 때문에 강한 태풍에 거의 다 떨어졌다. 농민들은 1년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가 하늘만 원망하였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태풍 피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나무에 붙어있는 사과를 발견하게 된다. 태풍이 불어도 사과가 붙어있는 나무는 튼튼한 종자라고 생각하고 가지를 잘라서 접붙이기해서 10배를 부르는 가격에도 순식간에 팔려 이윤을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은 어떤 관점을 가질까? 아마 올해 농사는 다 망쳤다고 생각하고 땅에 떨어진 사과만 쳐다보며 태풍을 원망할 것이다. 하지만 나무에 붙어있는 몇 개의 사과를 보고 가능성을 보는 새로운 관점은 모든 농가에 이익을 남겨주었다. 실패라고 해서, 마치 태풍에 떨어져 버린 사과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 분명 실패에도 나무에 붙어있는 좋은 종자와 같은 사과가 있다. 물론 실패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현재 17점만 그의 작품으로 여겨지며 그중 몇 가지는 심지어 미완성이다. 그 미완성도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높은 가치다. 바로 ‘어떻게 보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인디아나 주 사우스밴드 시에서 노터데임대학교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간의 농구 대회가 있었다. 그런데 경기 종료 3초를 남겨두고 한 점 차로 앞서가던 노터데임 대학의 선수가 반칙하면서 대회를 더 뜨겁게 달구어졌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팀에서는 자유투의 기회가 왔는데, 두 개를 성공시키면 역전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노터데임 대학을 응원하는 관중들은 자유투를 방해하기 위해 야유를 보내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런데 두 골을 모두 성공시키면서 역전승을 거두게 된다.

기자가 그 선수에게 “저렇게 심한 야유 속에서 어떻게 골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그 소리를 응원하는 야유로 생각했습니다.”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할지 아니면 부정적인 관점을 유지할지는 성공과 실패의 토대다. 자유투를 성공시킨 선수가 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관중들이 조용할까? 아니다. 관중들은 오히려 더 심한 야유를 보내면서 방해를 할 것이다. 실패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변하는 것은 어떻게 볼지 관점을 변화시키는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리우 올림픽 때 박상영 선수의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독백은 모든 사람에게 관점을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박상영 선수는 16강에서 만난 세계랭킹 2위 이탈리아 선수인 가로조 선수를 만나 승리를 한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세계랭킹 3위의 임레선수를 만나지만, 15점 내기인 에페경기에서 경기 후반에 무려 13:9로 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주저하거나 포기하고 만다. 더구나 펜싱종목에서 한국이 과거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박상영 선수는 한 개만 실수해도 경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관중들은 이미 경기 승패가 난 것처럼 환호하였지만, 그는 조용히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고 독백한다. 그리고 흔한 동시 타 하나 없이 연속 5득점을 하며 금메달을 따게 된다. 뉴스 기사를 보니 펜싱에서 5점을 연속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1%도 안 된다고 한다.

경기 후반에 13:9라는 점수 차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포기할까?’. ‘그냥 은메달로 만족할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점수를 보고 자신의 경기 스타일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였다. 그 짧은 시간에 자신에게 개선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보완하여 실패가 아닌 이기는 방법에 주목하였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똑같이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잡은 그 기회가 모두 성공하지 않는다. 기회는 성공보다 실패를 오히려 많이 맛보게 한다. 하지만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준다. 실패 속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는 의미다. 우리가 실패를 어떻게 보는 관점에 따라 성공의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나 자신만 변화시킬 수 있다. 모든 것은 우리가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톨텍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 전체를 ‘미토테’라고 부른다. ‘미토테’는 바로 안개를 뜻한다. 나 자신과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보고 믿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있을 때 실패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깨지게 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편견과 잘못된 관점은 올바른 관점과 행동이 있을 때 안개처럼 걷히고 만다. 자신의 꿈과 관련된 관점의 틀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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