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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정연 Jan 09. 2019

친구는 양날의 칼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을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아래 있잖니. 눈빛만 보아도 널 알아.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준 너. 늘 푸른 나무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널 얻은 이 세상 그걸로 충분해. 내 삶이 하나 듯 친구도 하나야.” -안재욱 <친구 가사>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는 내 애창곡이면서도 단지 즐거움을 위한 노래 이상이다.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 ‘과연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새로 온 학생들에게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친구가 소개해줘서라고 답한다.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우정을 과시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소한 일로 인해 그 친구와 관계를 두는 경우도 많다.

친구(親舊)는 원래 친고(親故)와 같은 말로 ‘친척과 벗’을 뜻한다. 친(親)은 친척을 의미하고, 구(舊)는 ‘오랜 벗’을 의미한다. 유치원 때부터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디디며 우리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고, 어려움에 부닥친 친구는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누구를 친구로 사귀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친구를 도와주고 사귀어야 하는지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학생들 대입 면접 예상 질문에 이런 질문이 있다.

“친한 친구가 목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이 질문에 대부분 대답은 ‘빌려주지 않겠다.’라고 대답한다. 그 이유는 ‘돈으로 인해 우정에 금이 갈 수가 있고, 우정이란 쉽게 만들어지지 않은데 단지 돈으로 인해 우정이 상해서는 안 된다.’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질문에는 단지 그냥 친구가 아닌 ‘친한 친구’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단지 얼굴만 아는 재미를 위한 친구인지 아니면 친한 친구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MIT 대학원생 제임스 스토너는 ‘위험 감수’에 대해 실험을 하였다. 실험의 목적은 집단이 내린 결정과 개인이 내린 결정에 대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실험 결과를 간단히 정의하면 집단이 내린 결정은 위험 수준이 매우 높은 경향을 보였다. 혼자서 결정을 내릴 때는 냉정하게 모든 면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결론 내리지만, 집단이 결정을 내릴 때는 극단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갖춘 집단이면 좋지만, 대부분 10대처럼 공격적이고 위험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집단은 더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집단적인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는 매우 비합리적일 수 있으니 친구는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현재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는 학생도 원인은 친구들의 전화를 받고 나가면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 친구들도 내가 아는데 그들은 단지 하루 이틀 친구가 아닌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기에 서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제공한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단지 기분전환을 위한 친구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진정으로 위해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그런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여학생 중에 중학교 때까지 착실하게 공부와 학교생활에 충실한 학생이 있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중학교 때처럼 생활을 착실하게 잘하고 있으리라 당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도망가고, 기숙사 규칙도 어기고 담배’ 문제 때문에 상의가 필요하니 부모님을 학교로 오시라는 전화였다. 그 학생이 어떻게 갑자기 변하게 되었는지 나도 궁금했다. 그 원인을 알아보니 바로 학급 친구였다. 이 학생은 친구면 마냥 좋은지 알고 친구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소위 ‘왕따’가 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친구들과 맞추려 하다 보니 결국은 성적도 하락하게 되고, 중학교 때 보인 자신감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속담대로 ‘친구 따라 강남’ 가고 말았다.

한편 교원대를 지망하는 또 다른 남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을 볼 때마다 오히려 내가 배울 점도 제법 많은 학생이다. 같은 반에 화재로 인해서 집이 불에 타버린 여학생이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이 남학생은 그전까지 쾌활한 여학생이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힘이 없어 보여 뭔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학생회와 동문회에 이 학생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금하자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였다. 그 과정을 들어보니 한창 돈에 민감할 학생들에게 모금하는 것은 어렵고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그 여학생을 위해 성금을 성공적으로 모금하여 학교 이름으로 전달하였다. 이 학생은 남다른 또 다른 점이 있다. 말이 거칠고, 욕을 찰지게 할 그런 나이인데 절대 그런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이나 후배가 있으면 조용히 다가가서 ‘욕을 하지 말자’라고 말하여 바로잡아준다. 그러면 이 학생이 오지랖 떠는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할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모든 학생이 이 학생을 좋아하고 더구나 후배들이 웬만해서는 선배 칭찬을 안 하는데 모든 후배가 선배로서 존경한다.

전자와 후자 중에 진정한 친구는 누구라고 생각할까? 당연히 후자다. 즐거움을 위한 친구는 반드시 얼마 가지 못한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지속되지 않고 반드시 지겨울 때가 온다. 지겨움이 올 때 그 친구 역시 지겹게 여겨지며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자신에 단점도 조언을 해주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친구는 만날수록 더 만나고 싶어진다.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들어주고, 듣기 싫은 조언도 해주는 친구는 우리가 인생에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이 학교생활에 적응도 어렵고,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을 때 자신을 점검하는 방법도 있지만, 자신의 환경 즉 자주 만나는 친구를 점검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라는 널리 인용되는 문구가 있다. 자신이 자주 만나는 친구 5명의 현재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최대 비만인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 먹을 것을 좋아하는 최대 비만 사람들 사이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현재 자신이 처한 환경은 자신이 자주 만나는 다섯 명의 모습이 자신의 거울이다. 자신이 어떤 모습을 원한다면 그 모습을 갖추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교제를 즐기면 된다. 그 친구의 모습을 결국은 자신도 갖추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비만인 남학생이 있었다. 중3 때까지 몸무게가 120kg을 넘을 정도였고 더구나 어린 시절부터 비만이라 몸무게를 줄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1년 후에 만났는데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져있었다. 그것도 75kg까지 감량한 것이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나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일단 전에 먹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그랬더니 살이 빠지고 그 친구들과 있으면 운동만 하니까 살이 알아서 빠지던데요.”

이 학생은 지금 배드민턴 도 대표로 나갈 정도로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인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단지 취한 행동은 자신이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를 선별했다. 전에는 단지 즐거움을 위해 친구를 만났지만, 이제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면서 귀여운 여자친구와 즐겁게 지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스펀지와 같다. 모든 것을 흡수한다. 스펀지가 조용히 흡수하는 것처럼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좋든 안 좋든 그 영향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은연중에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닫지 못한다. 결국은 그 영향대로 자신 인생의 시간이 지나 길의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특히 친구들의 영향은 매우 강력하기에 진정한 친구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처럼 중요한 사람을 우리의 삶에서 완전히 단절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단지 즐거움을 위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는 경계해야 한다. 대부분 즐거움을 위해 만났던 친구 관계는 대학교 입학하고 사회생활 하면서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창시절 자신들의 꿈을 위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 친구들은 사회 생활하면서도 꾸준히 연락하고 서로의 안위를 항상 걱정하며 응원한다.

댄 설리번은 “당신의 과거보다 당신의 미래를 일깨워주는 사람들과 가까이하라.”라고 말했다. 과거에 발목이 잡히면 더 발전해 나갈 수가 없다. 자신의 미래를 일깨워주는 친구 그리고 자신도 그 친구를 위해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상담할 때 ‘자신의 생활신조가 무엇인지?’ 가끔 물어본다. 그때 한 남학생이 “저는 행복 바이러스가 되고 싶어요. 남에 의한 행복도 중요하지만, 제가 먼저 행복하면 남에게도 행복을 전달할 수 있잖아요.” 진정한 친구는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슬퍼하면 친구의 슬픈 마음속에 들어가서 달래주고, 친구가 기뻐하면 기뻐하는 마음속에 들어가 더 즐겁도록 서로를 붙잡아주는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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