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은 정말 작은 도시이다. 위스키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펍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더블린은 펍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다. 혼자라면 더욱이. 그래서 사실할 일이 별로 없다. 카페에서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책을 좀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외국의 카페는 장시간 앉아서 카공(카페에서 공부)하는 문화가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매일 방에서 시간을 보내자니 한국에 돌아가면 아쉬울 것 같아 어디라도 나가보려 더블린 근교로 떠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장소가 호스(Howth)이다. 가기 전 홈스테이 주인이 오늘 특별한 일정이 있냐는 질문에 호스에 간다고 했더니 바람 조심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장갑도 챙기고 모자가 달린 외투도 챙겼다. 그런데 웬걸 조심할 수준이 아니라 재난 수준이었다. 거의 뭐 나 혼자 재난영화 찍고 왔다. 바람에 기대 누워야 똑바로 서 있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 호스는 하이킹코스도 있다. 이 코스가 바다를 볼 수 있도록 길이 나있다. 그런데 정말로 이 바람에 발이라도 잘 못 헛디디였다간 절벽 밑으로 떨어져 파도에 쓉쓸려 갈 것 같았다. 입이라도 벌리면 치아 사이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스케일링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10분쯤 걷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집으로 돌아갈까 했지만 나온 김에 먹고 싶었던 '글램 차우더'(해물 크림수프)는 먹고 가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포장만 가능한 가게였다. 포장을 해서 근처 공원에 가서 먹었는데 뚜껑을 열고 5초 만에 차가워졌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솔직히 무슨 맛인지 전혀 모른 채로 먹었다. 먹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날씨가 좋은 날 다시 호스를 도전했다. 날씨 좋은 날 가니 아름다운 도시였다. 등대(light house)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면서 잔잔한 바닷바람을 즐겼다. 호스에서 물개(seals)를 볼 수 있다던데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에 호스 3번째 도전을 하려고 한다.호스 영상 보러가기
다음으로 간 근교는 말라하이드(Malahide)이다. 사실 말라하이드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주말도 어디 안 나가냐는 홈스테인 주인의 말에 어디라도 나가야 할 것만 같아서 말라하이드에 가기로 했다. 사실 이곳은 주인아주머니의 추천 도시였다. 꽃들로 참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다. 그래서 구글에 검색해 보니 말라하이드 성이 있고, 공원이 있고, 온실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공원에 있다가 돌아오자 하는 마음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 공원이 참 예뻤다. 사실 별거 없는 공원이었는데, 넓은 잔디밭에 강아지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 평화로워서였을까 참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말라하이드 성 투어도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말라하이드 성 투어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 투어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성 외부에서 볼 때는 마치 레고로 만든 아기자기한 귀여운 성처럼 보였는데, 막상 들어가니 내부가 정말 넓었고 옛날 서양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인테리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록 영어 투어였기에 성과 관련된 역사와 이 성 집안사람들의 이야기의 대부분을 못 알아 들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은 달키(Dalkey)이다. 영화 '싱스트릿'의 촬영지였다. 영화 '원스'와 '싱스트릿'의 마니아층은 꼭 아일랜드에 여행 와서 방문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나는 사실 저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취향이 아니다. 그래도 영화 촬영지이면 예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도착해서 제일 먼저 촬영지였던 sorrento 공원으로 갔다. 사람이 많이 없는 오전에 가서 나 혼자 그 아름다운 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 언덕 꼭대기에 서면 바다 건너로 달키 아일랜드가 보인다. 태양에 반짝반짝 빛나는 바닷물에, 습하지 않은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샌드위치를 먹고 내려왔다. 그리고 그냥 하염없이 걸었다. 그 길 중간에 해변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서 가볼까 하는 생각에 해변을 내려다봤는데, 벌써 한참을 걸어 지친 상태라 저 해변까지 다녀올 수 없을 것 같아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리쉬 아저씨 한 분이 "해변가 가려는 거 아니야?"라고 말을 건넸다. "맞는데,,, 많이 멀어?"라고 물었고, "별로 안 멀어, 예쁜 해변이니까 보고 와. 저기 다리만 건너고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 해변가야."라고 말해주셨다. 그래서 그냥 가보았다. 안 다녀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모래사장의 해변가라기보다 고운 자갈의 해변이었다. 외국인들은 모두 비키니만 입고 광합성 중이었다. 나만 꼭꼭 감싼 채로 파도 소리만 즐기다 돌아갔다. 돌아가기 위해 DART(지상철과 비슷한 교통수단 중 하나) 역까지 또 걸어갔다. 가는 길에 어린이 3명이 자신들의 오래된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외국에서는 이런 것이 조금 흔하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그래서 뭐라도 사보려고 말을 걸었다. 제일 첫째로 보이는 아이가 장난감들을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사실 이 설명도 절반은 못 알아 들었다. ㅜㅜ) 얇은 동화책 2권과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은 카드를 구매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달키영상 보러가기
근교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기억 속에만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서 영상으로 만들어 남겨보려고 한다. 그리고, 근교 여행 중에 벨파스트(Belfast)도 있는데, 이곳은 유독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따로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사실 쉬려고 아일랜드에 왔지만 또 9시부터 1시까지 어학원을 다니며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 이곳조차 특별함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주말에는 의지를 가지고 여러 곳을 방문해서 후회 없는 아이랜드 생활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