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학생 인생에서 잘한 일, 잘한 짓

아직까지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말할 만한 그런 경험은 없다. 하지만 내 성격을 만드는데 중요했던 사건이라면 아마 이때가 아닐까 싶다. 전공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자퇴를 할까? 반수를 할까? 전과를 할까? 고민했지만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내리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나와 맞지 않은 전공이기에 따라가기 벅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과를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해 보고 그래도 따라갈 수 없다면 그때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둘째, 대학에 적응하기 힘든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를 가나 똑같이 겪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옮긴 그곳이 나와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나의 목표는 이곳에서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전공은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과제가 쏟아졌다. 전공과목 당 일주일에 하나씩 과제를 했어야 했다. (보통 과제는 문제 풀이였다.) 유독 다른 과보다 과제와 시험이 많았다. 다른 과 친구들이 쪽지 시험이냐고 물어보면 살짝 화가 났다. 성적에 반영되는 시험이 과목당 3번, 많게는 5번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공부 패턴은 수업을 듣고 바로 과제를 하기 바빴다. 혹자들은 이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수업 내용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는데 과제를 풀으려니 풀리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몇 문제는 잘 풀다가도 뒤에는 답지를 보고 베끼기 일쑤였다. 그러다 2학년 1학기가 마무리가 되어갈 쯤인 5월 중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만약 이대로 졸업하면 과연 이 과목을 전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 습관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다. 사범대의 장점을 활용하자. 사범대는 졸업 학점이 취업하는데 아무 상관이 없다. (교원자격증을 갖고 임용고시만 통과하면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과제 내용에 몰두한 것이 아닌 '과제 제출'에 몰두해 있었다. 어쨌든 과제를 제출해야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은 채로 과제 끝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완전 뒤엎었다. 무조건 복습하고 과제를 시작하기로. 혹여나 복습을 하다가 과제할 시간이 없다면 과제는 제출 안 하지 뭐! 이렇게 결심하고 실천했더니 변화가 찾아왔다.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제로 제출하지 못한 과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올랐다. 물론 이 방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학기가 시간 되면 거의 3, 4시간 밖에 자지 못했던 것 같다.


성적이 올랐다고 할지라도 1학년 때 성적이 너무 낮은 탓인지, 또는 오른 점수도 최상위권은 아닌 탓인지 내 졸업 학점은 기대만큼 높진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누구보다 전공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계산적이지 못하다는 뉘앙스로 미련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말하길, 아마 내가 과제 제출하는 것에 더 집중했다면 성적이 더 높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사회는 보이는 수치(성적)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이 전환을 통해 학습이 무엇인지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인생에서 잘한 짓이 있다. 바로 연구실에서 나온 것이다. 교사가 되면 학생들에게 실험 수업, 탐구 수업을 해주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무언가를 연구하는 경험과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 교수님의 연구실에 지원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자 했다. 그런데, 교수님과의 언어의 장벽은 높았다. (한국인 교수님이십니다. 하지만 교수님과 학생 사이에 언어의 장벽이 있더군요.) 이때 나의 1순위는 전공 공부, 2순위가 동아리 활동, 3순위가 연구실 활동이었다. 그러니 연구가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잘못이지만 그땐 이게 잘못인지 몰랐다. 어느 날은 교수님께서 날 부르시더니 연구실 활동이 힘든지 솔직히 말해달라는 말씀에 정말 솔직하게 답변했다. "전공 공부도 하고 연구실 활동도 하려니 조금 벅차요."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하! 이게 벅차?"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속에서 '이럴 거면 왜 물어보신 거지?'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이 외에도 종종 마음이 상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6개월도 하지 않은 채 나왔다. 당연히 연구라고 말할 만큼의 무언가를 하지도 못했다.


대학원 진학에 조금 마음이 생겨 친구의 조언과 관련 책을 읽으니 교수님들께 연구 실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근래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그때 연구가 더뎠던 것과 교수님과 연구에 대한 소통이 부족했던 것이 온전히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죄송스럽다. 때로는 여전히 부족한 실험 수행 능력과 연구 경험이 없는 것이 아쉬워서 후회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 들곤 한다. 그렇지만 연구실에서 나온 것은 잘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또한 누군가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버텼어야지. 좋은 스펙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나약해." 하지만 나를 갉아먹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싶진 않았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여 사람의 성격을 만든다. 그중 큰 주축이 되는 사건이 있을 텐데, 나에게는 이 사건들이 그중 하나이다. 이때를 통해 남이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길을 선택하는 힘을 길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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