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자연사 박물관: 안은 박제, 밖은 야생

박물관은 살아있다

by 사막여우

오늘은 뉴욕 자연사 박물관을 갔다. 여기는 어린이들의 핫플인 것 같다. 지하철에서 내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이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었다.


이곳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영화의 실제 배경이 이곳인지, 아니면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알고 보니 1편은 뉴욕, 2편은 워싱턴을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결국 두 곳 모두 영화 속 장소가 맞는 셈이다.


클래식한 건물 로비에 들어서면 거대한 초식공룡뼈, 바로사우루스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포유류관(Mammals)

포유류관의 디오라마가 인상적이다. 이 디오라마들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해 박제로 만드는 것에 대한 법적 제재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엄청난 퀄리티의 야생 동물 디오라마를 볼 수 있다.


과천 과학관의 이정모 관장님은 자연사(Natural History) 박물관은 자연사(Natural Death)한 생물을 전시한 곳이라고 말한다. 불행히도 이곳의 동물들은 '자연사'하지 못했다.


전시장 한편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미술 교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맹수의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입체적으로 관찰하며 그릴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싶다.

맹수를 가까이 들여다보니 의외로 귀엽기도 하다.


해양생물관(Ocean Life)

해양생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커다란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29m의 거대한 긴수염 흰고래이다. 1925년에 잡혔던 고래를 복제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고래는 보면 볼수록 경이로운 존재이다.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서 고래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료와 초음파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썼다. 칠흑 같은 심해 속, 이토록 거대한 존재가 뿜어내는 파동이라면 지구 반대편까지 닿는 대화가 정말 가능할 것도 같다.


보이지 않는 세계(Invisible Worlds)

우리는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를 모두 볼 수 있는 통합 티켓으로 구매했다. 특별전시도 여러 개의 관이 있고 각자 별도로 시간을 예약해야 했고, 상설 전시관만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모든 특별 전시를 다 보지는 못했다.


특별전시 중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재미있었다. 이 전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세 기관과 그들의 세계를 조명한다. 촘촘한 텍스트와 설명 패널이 이어지는 초입부를 지나자,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360도 영상관이 나타났다. 요즘 유행하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공간이다.


거대한 스크린 위로 펼쳐진 영상이 볼 만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아주 작은 미생물이나 세포를 확대한 듯한 장면에서 시작된 영상은 점차 시야를 넓혀 다양한 장소를 비췄고, 마침내 이 박물관이 있는 뉴욕 센트럴파크의 전경으로 이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모든 미세한 기관들이, 결국 우리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라는 이 전시의 주제를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나의 호흡이, 공원 나무의 광합성이, 흙 속의 미생물이 각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명 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 눈에 보이는 거대한 도시를 지탱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작은 세계일지도 모른다.


기념품 가게를 지나야 출구

이 박물관은 지금껏 본 그 어느 박물관보다 뮤지엄샵에 진심인 곳이다. 무려 세 개 층에 걸쳐 거대한 메인 샵이 자리 잡고 있고, 모든 전시관 출구와 이동 통로 구석구석마다 어김없이 기념품 가게가 포진해 있었다. 그야말로, 기념품 가게를 지나야 비로소 탈출할 수 있는 구조이다.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동심을 자극하는 귀여운 소품이 가득했다. 살만한 것은 없었지만 갖가지 소품에 탐내는 아이를 설득하는 것이 힘들었다. 관람 동선마다 촘촘히 배치된 상술과 규모만큼은 정말 인정.자본주의의 중심, 미국답다.



야생은 살아있다

점심 시간, 박물관 앞 센트럴파크로 나갔다.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할랄푸드를 기대했지만, 이번엔 실패였다. 모든 할랄푸드가 맛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이날 구입한 덮밥은 엄청나게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트럭에서 추가로 음식을 사야 했다.


서울에 비둘기가 있다면, 센트럴파크엔 다람쥐가 있다. 공원의 사람들이 다람쥐에게 빵 조각을 던져주고 있었다. 남편이 다람쥐에게 빵을 건네보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줄 듯 말 듯. 짧은 탐색전이 지나고.


그 순간, 다람쥐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빵을 낚아채 달아났다. 남편의 손등 위로 선명하게 네 줄의 붉은 스크래치를 남기고. 다람쥐의 발톱 자국이었다. 박물관 안에 박제된 야생 동물이 있다면, 박물관 밖에는 진짜 야생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남편은, 뉴욕 다람쥐에게 공격당하다.



공룡화석

다시 박물관으로 복귀하여 공룡화석 관을 구경했다. 오후가 되니 박물관에 사람이 정말 많았다.


아시아 문화관

이어 둘러 본 아시아 문화관에는 각 나라 관련 전시가 있었다. 중국, 일본, 인도 등에 비해 매우 소박한 한국관이 조금 아쉬웠다. 아마도 이 박물관이 건립되고 전시물이 수집되던 당시,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이 딱 이 정도였기 때문이겠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귀여운 뉴욕의 소방차.

내일은 워싱턴 DC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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