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타샤 튜더 탄생 110주년 기념 전시>를 다녀왔다. 사실 전시를 보기 전까지 그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그저 친구가 보고 싶어 해서 동행했을 뿐이다. 국어 교사인 친구와 미술 교사인 나. 문학과 회화가 만나는 이 전시는 어쩌면 우리 둘 모두의 관심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선 전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11시 도슨트의 해설을 듣고, 이후 자유롭게 전시장을 거닐며 천천히 작품과 공간을 감상했다. 전시는 그녀의 회화, 영상, 공간 연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공간마다 그에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와 시각, 청각, 감각을 모두 자극하는 종합적인 전시 연출을 보여주었다.
전시는 그녀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담은 일러스트 미디어아트로 시작된다.
미디어아트를 지나면 그녀의 일대기가 설명된 패널이 있다. 타샤 튜더는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녀의 이름 '타샤'는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 속 여주인공 '나타샤'에서 따온 애칭이라고 한다. 건축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예술적 감각을 물려받은 그녀는, 23세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을 시작으로 <마더 구스>, <1은 하나>로 칼데콧 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우리에게는 <비밀의 화원> 삽화 작가로도 친숙하다.
타샤는 20세기를 살면서도 19세기의 생활 방식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급자족하는 그녀의 삶은 소로의 '월든'은 연상하게 했다. 실제로 그녀의 본가는 보스턴의 명문가였으며, 당대 유명 인사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중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있었다고 한다.
전시 티켓에도 인쇄된 그림이다.
세 겹의 샤(천)에 영상을 투사해 하늘하늘 움직이는 연출은 그녀의 자연주의적인 일러스트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
베키의 생일 케이크
전시 중 가장 이채롭고 사랑스러웠던 일화는 '베키의 생일 케이크' 이야기다. 타샤의 집 근처에는 작은 시내가 흘렀다. 자녀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밤이면, 아이들은 시냇물 하류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고 한다. 타샤가 직접 만든 생일 케이크를 나무판과 이끼 위에 올리고 촛불을 밝혀 상류에서 띄워 보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반짝이며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오는 케이크를 보며 환호하던 순간을 자녀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타샤 튜더가 직접 만들었다는 인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타샤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그렸다. 그림에 빈 공간이 있는 이유는 카드라는 용도 때문이다.
1995년에 그린 크리스마스 삽화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지하에 사는 쥐들조차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는 귀여운 모습이 담겨 있다.
사실, 타샤 튜더의 인체 드로잉은 인물의 동작이나 비례가 다소 어색하고 부자유스러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따뜻한 색감과 투명한 수채화 기법 덕분에 그림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특히 동물과 식물 묘사가 정말 아름답다.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가느다란 세필로 그린듯한 섬세한 터치와 그림을 감싸는 예쁜 테두리 장식(Border)은 타샤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일부 전시장 내부는 타샤가 살았던 집의 조도를 재현해 꽤 어둡게 연출되어 있었다. 그녀는 전기를 거부하고 직접 밀랍으로 만든 초를 켜고, 1930년대식 부엌에서 장작 난로에 불을 지피며 요리를 했다고 한다.
타샤의 집 내부를 연출한 공간에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앉아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는 효과음이 좋았다. 타샤는 자신이 키운 양털로 천을 짜고 정원의 화초로 천연염색을 한 후 담요와 셔츠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네 남매를 키우며 살림을 하고, 옷을 짓고, 그 와중에 삽화가로서의 커리어까지 이어간 그녀. 그 모든 것을 해낸 에너지가 놀랍다.
영상실에서는 타샤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서 진행한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왔고, 매 순간을 즐겼어요. 나는 늘 행복해요"
라는 타샤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그런 곳에서 산다면 나라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의 마지막은 그녀의 정원을 연출한 공간이다. 그곳엔 사과꽃이 만개한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나무 몸통에 인조 꽃을 부착하여 만든 나무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두 아들 중 한 명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며느리가 쓴 '나의 시어머니 타냐 튜더'라는 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