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 리얼리즘과 전통 조소의 사이
론 뮤익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20년 전, 호주국립미술관에서였다. 당시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작품을 마주했지만, 그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임신한 여성의 나체 조각상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처럼 하이퍼 리얼리즘은 감정을 배제한 채, 극도의 사실적 표현을 통해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이번 학기에 하이퍼 리얼리즘 수업을 진행하며 론 뮤익의 작품을 참고 자료로 사용했는데, 우연히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론 뮤익 개인전이 있었다.
론 뮤익은 호주 출신의 작가로,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 보통 2~3년씩 혼자 작업하던 그가, 까르띠에의 지원을 받으며 현재는 여러 테크니션을 거느린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국의 작은 섬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마스크'는 작가의 자소상이다.
앞모습은 평범한 커플 같지만,
뒷모습을 보면 여성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연인이 아니라 조용히 협박당하고 있는 장면 같다.
약 열 점 정도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아쉬운 점은 소형 작품이 많았고, 가이드라인이 너무 멀어서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피부의 실핏줄이나 속눈썹 같은 정교한 세부 묘사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는데, 그 정도로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건 어려웠다.
마지막에 상영된 약 30분 길이의 제작 영상 두 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상에서 보여준 제작 방식은 다른 하이퍼 리얼리즘 작가들과는 조금 달랐다. 대개 하이퍼 리얼리즘 작가들은 사진을 참고하여 그림을 그리고, 에어브러시로 매끈하게 마무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입체 작품의 경우, 듀안 핸슨은 인체를 주형으로 떠서 제작한다.
하지만 론 뮤익은 전통적인 소조 기법을 사용한다. 점토로 형태를 만들고, 이를 석고로 떠서 다시 주형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런 전통적인 기법으로 극사실주의 작품을 창조하는 그의 방식은 사실적인 표현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 요즘처럼 전통 기법으로 작업하는 작가가 많지 않기에, 그의 장인 정신에는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미술관 서울은 새로운 전시가 열릴 때마다 자주 방문하는 곳인데, 이번처럼 많은 관람객이 몰린 경우는 처음이었다. 국내에서 다시 론 뮤익의 개인전을 볼 수 있는 날이 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