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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Feb 02. 2024

[05] 퐁듀와 뢰스티, 그리고 유람선

여행 네 번째 날

2023년 10월 2일 화요일

퐁듀와 뢰스티, 그리고 유람선

스위스에서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쉬면서 여유롭게 기로 했다.

인터라켄

아침을 먹고 숙소 옆 공원을 산책했다. 스위스 10월 초 아침은 쌀쌀하다. 산에는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초 역세권 숙소이다. 왼쪽이 인터라켄 동역, 오른쪽이 유스호스텔.


스위스에 왔으니 퐁듀를 먹어보기로 했다. 유럽여행 카페에는 한국인 입맛에 맞는 퐁듀 맛집 정보 알코올을 빼달라고 하거나 토마토 퐁듀를 추천하 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스위스 퐁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인터라켄 현지인 맛집 'Laterne'

인터라켄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있는 'Laterne'라는 식당이었다. 식당 내부는 동네 할아버지와 인근 직장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양인은 우리 가족 밖에 없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퐁듀, 뢰스티, 키즈 햄버거를 주문했다.

퐁뒤와 뢰스티


퐁듀는 꾸덕꾸덕하고 알코올 향이 강하게 나는 특이한 맛이었다. 아, 이게 진짜 스위스 퐁듀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먹어본 단순히 치즈 녹인 맛 퐁듀에 비해 진하고 풍부했다. 맛있다기보다는  원조 퐁듀를 맛보는 데 의의가 있었다. 먹다 보니 익숙해져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아이는 한 입 먹고 경악했지만.


뢰스티는 채 썬 감자를 납작하게 부친 것으로, 토핑을 곁들인 감자전과 비슷한 맛이다. 이 집이 뢰스티 맛집이라고 하는데, 바삭바삭하니 정말 맛있었다. 스위스에는 '뢰스티 경계선'이라는 용어가 있을 만큼, 스위스 내 독일어권과 프랑스어권의 차이를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소를 보았다. 주택가에 소가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인터라켄


인터라켄 동역 : 브리엔츠 유람선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인터라켄 동역 선착장에 브리엔츠 유람선을 타러 갔다. 브리엔츠 유람선은 스위스 트레블패스로 탑승 가능하지만, 우리가 가진 2등석 패스는 유람선 1층에만 있어야 하고 2,3층은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랜드 트레인 투어'라는 앱을 설치하면 1등석 업그레이드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유람선 타기 전 티켓 박스에서 쿠폰을 제시하고 1등석 티켓으로 교환했다.


브리엔츠 유람선 2층


2층은 탁 트여 있어 1층보다 풍경 감상하기에 훨씬 좋다. 18년 전에 이 유람선을 탔을 때는 추위와 비바람, 안개로 지루했었다. 이번 여행은 날씨가 다 했다.


브리엔츠 유람선
브리엔츠 유람선


브리엔츠 호수에는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인 이젤발트가 있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현빈이 호숫가에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었다. 조용한 마을이던 이젤발트가 드라마 때문에 시끄러워졌다고 한다. 이 유람선도 이젤발트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내리고 탔다. 결국 최근에 현빈이 피아노 치던 데크의 입장이 통제되고 유료화되었다.  


출발할 때는 해가 뜨거웠는데, 어느 정도 해가 약해져서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은 지붕이 없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브리엔츠 유람선 3층

유람선이 종착역 브리엔츠에 도착했다. 우리는 내리지 않고 그대로 인터라켄 동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 뒷자리에 앉은 백인 할머니가 뜬금없이 아이도 돈을 냈는지 물었다. 는 스위스트레블 패스를 가지고 있고 자녀는 무료 포함이라고 대답했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여기는 1등석인데 아이도 돈을 낸 거냐고 재차 묻는다.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물었다.

"여기 3층은 노인석인가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뭐, 돈 냈다면 됐어."

남편, 돌려 까기 잘했어.


때마침 원이 올라와 3층 승객 티켓을 확인하고 가자 할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3층 승객 대부분은 백인 노인었는데, 젊은 동양인 가족이 1등석에 탄 것이 못마땅한 건지 불쾌했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출발한 유람선은 브리엔츠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동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동역에서 내일 탈 기차 플랫폼을 한번 더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는 비치된 헤어드라이어가 없고, 카운터에서 디파짓을 내고 대여할 수 있다. 짐 정리하다가 첫날 빌렸던 드라이어를 반납하러 카운터로 내려갔다. 마침 저녁시간이라 체크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멘 동양인 남자가 체크인 중이었는데, 예약에 문제가 는지 진행이 안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모니터를 살펴보던 직원이 드디어 문제점을 찾아냈다. 너 왜 11월로 예약했어? 10월 2일이 아니라 11월 2일로 예약했었네. 깜짝 놀라 허둥대는 남자의 뒷모습만 봐도 얼마나 당황하고 있을지 느껴졌. 다행히 빈 침대가 있어 직원이 예약을 변경해 줬다. 역시 홀로 여행객의 장점이다. 가족 여행이었다면, 상상만 해 아찔하다.


내일은 이탈리아로 이동한다. 스위스를 떠나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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