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를 가다

by 사막여우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가 문을 열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공간이다. 현재 1층 전시실에서 개관을 기념하여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의 과거, 현재, 미래 조명'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화려한 유물 뒤에 숨겨진 치열한 복원의 과정을 만날 수 있다.


보존과학센터 가는 길

보존과학센터는 국립중앙박물관 본관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본관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건물을 끼고 돌 거나, 박물관 주출입구 거대한 보이드 계단을 넘어 후원을 지나갈 수 있다. 홍보가 부족한 탓인지, 혹은 외진 곳이라는 위치 때문인지 관람객이 드물었다. 평일 낮이긴 했지만 전시실에는 우리 가족뿐이었다.


1부 박물관 보존과학의 역사

전시의 시작인 '보존과학자의 방'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보존과학의 태동기를 만나게 된다. 1976년, 우리의 보존과학은 낡은 책상과 면봉 같은 지극히 소박한 도구들로 시작했다.

옛 보존처리실을 재현한 공간에는 초기 연구자였던 고(故) 이상수 선생님의 모습이 AI영상으로 재현되어 있다. 영상 속 선생님은 1976년 당시, 국보인 기마인물형 토기를 보존 처리하던 그 순간을 보여준다.

반대편 벽면에는 우리 보존과학의 역사 전시패널이 있고, 그 아래 쇼케이스에는 당시의 유물 스케치와 보존 노트가 놓여 있다.


컴퓨터도, 정밀한 장비도 부족했던 시절, 요즘엔 보기 드문 손 스케치와 손글씨로 상세하게 기록한 노트가 인상적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문화재를 지키려고 했던 그 열정이 느껴졌다. 백제금동대향로, 봉수형 유리병 등 국보급 유물들의 보존처리 과정이나 '이사지왕' 글자 발견 같은 감동적인 순간도 만날 수 있었다.


1921년 일제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되었던 금관총 고리자루칼을 2013년에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 칼집 끝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확인했다. 백제의 무령왕릉 등과 달리 신라 고분에서는 피장자의 이름이나 신분이 밝혀진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이는 큰 발견이었다. 비록 이사지왕이 누구인지는 대한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이 발견을 기념하여 현재 경주 금관총 자리에는 '이사지왕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금관총 전시관이 건립되었다.



2부 빛으로 보는 보존과학의 세계

과거를 지나 현재로 오면, 첨단 과학 기술을 만날 수 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사물의 내면을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 들여다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특히 대형 스크린을 통해 목조여래좌상의 내부를 탐색하는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불상을 훼손하지 않고도 그 안에 잠들어 있던 후령통, 사리병, 직물, 책 등 253건에 달하는 복장품을 확인하고 수습해 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3부 보존과학이 열어가는 새로운 미래

전시는 보존과학이 열어갈 미래를 보여주는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그동안의 보존과학 성과를 플랫폼으로 구축하여 인공지능 기술로 가상 복원을 시도해 볼 수도 있고, 변화하는 기후나 오염 요소를 분석해서 앞으로 일어날 변화도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기술적 진보는 문화유산이 앞으로 안정적으로 보존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보존과학센터의 의미

박물관에서도 후미진 곳에 자리한 보존과학센터를 굳이 방문한 이유는 우리 유물을 알고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보존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문화재 발굴 역사는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었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문화유산에 관한 순수한 연구가 아니었다.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할 자료를 찾거나, 귀중한 문화재를 약탈하기 위함이었다. 빈약한 기술력과 허술한 인식 속에, 유물 발굴은 흙더미에서 대충 파내어 마대 자루에 담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다.


제대로 된 보존과학이 1976년에야 시작되었으니, 해방 후에도 한참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가 허술하게 파헤쳤던 신라 고분들을 최근 재발굴하여 새로운 역사의 기록을 쓰고 있고, 기존 유물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사지왕검'과 같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이 가장 큰 감동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시멘트로 대충 덧발라둔 미륵사지 석탑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다시 복원하는 과정은 무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복원이 진행되는 긴 시간 동안, 탑 위에 덧집을 씌워 관람객이 해체와 복원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한 점도 훌륭했다. 복원 과정 중 세 번 정도 미륵사지를 방문했었는데, 마침내 완성된 탑을 보았을 때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 보존과학 기술력의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확인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박물관의 가장 깊은 곳, 보존과학센터가 앞으로 써 내려갈 새로운 발견과 치유의 역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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