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가까운 아름다움, 국립중앙박물관 '이슬람관'

이슬람 미술 찬란한 빛의 여정

by 사막여우

국립중앙박물관 3층 세계문화관에 이슬람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카타르 도하 이슬람 예술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채워진 상설전시관, '이슬람 미술 찬란한 빛의 여정'이다. 전시는 2025년 11월 22일부터 2026년 10월 11일까지 약 11개월간 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앱을 설치하면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지만, AI 음성이라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시간별로 운영되는 박물관 도슨트 해설을 듣기로 했다.



1부: 이슬람 세계의 종교미술

이슬람은 낯설면서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종교이다. 가톨릭의 하느님, 개신교의 하나님, 유대교의 야훼, 그리고 이슬람의 알라는 본래 같은 신을 지칭한다. 모두 ‘모세 오경’이라는 뿌리를 공유하고 있어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은 예언자 무하마드가 생전에 신의 계시를 받아 암송했던 내용을 사후에 제자들이 집대성한 것이다. 쿠란은 그 자체로 완벽한 시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운율을 해치거나 신의 본뜻이 왜곡될 우려 때문에 오랫동안 타 언어로의 번역이 금기시되었다. 현대에 와서 조금씩 번역되고 있지만, 여전히 원문만이 진정한 신의 말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기에 문자가 지닌 시적 미학을 살려 신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는 ‘필사’는 이슬람 문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전시의 첫 공간이 화려한 초기 쿠란 필사본들로 채워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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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란의 필체는 단순한 글자라기보다 하나의 예술품 같다. 문자에 점이 찍혀 있는데, 이는 모음을 표현한다고 한다. 기존 아랍 문자가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정확한 낭독을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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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용 기도 카펫이 인상적이었다. 여섯 개의 조각을 이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6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패턴을 디자인해 한 번에 직조한 정교한 기술력이 돋보였다. 한 사람의 자리가 다소 좁아 보이는데, 이는 예배드릴 때 서로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깝게 앉는 이슬람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전직 전시 디자이너로서 눈길이 갔던 건 공간 연출이었다. 이슬람 건축 특유의 기하학 문양 창(Mashrabiya)을 통해 바닥으로 드리우는 그림자가 무척 아름답다. 천장에 매달린 프로젝터가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를 쏘아 보내 현실감을 더했다. 마치 이슬람 사원의 고즈넉한 회랑을 걷는 듯한 분위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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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이슬람 문화의 포용과 확장

전시의 2부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 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며 화려한 예술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직물, 유리, 금속공예품이 다른 문명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슬람의 확산 경로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던 아이가 깜짝 놀라 나에게 속삭였다.

“엄마, 난 이슬람이 인도에서 생긴 줄 알았어.”

불교나 힌두교처럼 인도에서 시작된 종교가 많다 보니 헷갈렸나 보다. 이번 전시 덕분에 아이의 오해를 바로잡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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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천장을 장식하던 유리 램프와 각종 공예품은 훗날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 유리공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나는 이를 보며 경주 신라 고분의 유물들이 떠올랐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봉수형 유리병과 유리잔은 당시 귀한 외제품으로, 대개 사산조 페르시아 지역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 이전부터 이어온 오래된 문화 교류의 흔적이 시공간을 넘어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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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기법들이 보였다. 금속판을 안팎으로 두드려 입체적인 문양을 만드는 '타출기법'으로 제작된 물병과 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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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금세공 장식품도 눈에 띄었다. 금속 표면 위에 작은 금 알갱이나 금실을 덧붙여 장식하는 방법이다.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신라 보문동 합장묘에서 출토된 귀걸이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이다. 먼 타국에서 신라의 흔적을 발견한 듯 반가웠다.


PS01001001_bon000_2019_0925134006775_bon006255-000-90000.jpg?type=w1600 경주의 보문동 합장분 금귀걸이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20260116_133510.jpg?type=w1600 아스트롤라베

가장 관심 있게 본 유물은 아스트롤라베였다. 최근 읽은 책에서 ‘고대 스마트폰’으로 소개되어 흥미로웠는데, 실물을 접하니 더욱 신기했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크기가 무척 작고 두께도 얇았다. 본판을 비롯한 다섯 가지 장치로 구성되어 있고, 사용자가 있는 장소에 맞게 재조합하여 사용한다. 시간과 장소는 물론 점성술까지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사용법을 여쭤보았는데 도슨트 분도 정확한 사용법을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하셨다. 나 역시 집에 돌아와서 자료를 더 찾아봤지만, 직접 사용해 봐야 그 원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사용되었다는 이 물건은 결국 이슬람과 유럽을 잇는 지식의 가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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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옆모습이 그려진 접시가 특이했다. 알라 외 우상숭배 금지로 인해 인물이나 동물을 잘 그리지 않는 문화 때문에 보기 드문 인물 초상 접시였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술탄 메흐메트 2세 초상 접시’라고 한다. 아마도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금기에도 불구하고 남긴 것이 아닐까 싶다.



3부: 이슬람 궁정 문화와 필사본

3부는 오스만(1299~1922), 사파비(1501~1736), 무굴(1526~1857) 제국의 화려한 궁정의 예술과 학문의 세계를 전시한 공간이다. 특히 왕실 후원으로 만들어진 필사본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종교, 문학, 역사, 과학이 어우러진 종합 문화유산으로, 이슬람 예술 중 가장 정교하고 수준 높은 분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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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황제초상을 보며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원근법이 있네요.”


그 말을 들은 도슨트 선생님이 무척 기뻐하셨다.

“맞아요! 제가 딱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주변 관람객들도 아이를 칭찬해 주셔서 아들의 어깨가 한껏 으쓱해졌다. 본래 평면적이던 무굴제국 세밀화가 16~17세기 유럽과의 교류를 통해 원근법과 명암법을 받아들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의 아들을 그린 이 그림은 인물의 얼굴을 측면으로 묘사한 무굴제국 회화의 특징도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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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전시장의 여러 필기구함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금박에 다이아몬드까지 박혀 있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써?”

초등학생다운 생각이 참 귀여웠다.



이슬람,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전시실 마지막은 ‘다마스쿠스 귀족의 응접실’을 미디어로 연출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특히 미디어 공간 맞은편, 실제 창문에 설치한 문양 틈으로 오후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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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편에는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 예술박물관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를 만든 거장 이오 밍 페이(1917-2019)가 설계했다고 한다. 아이는 그가 백 년 넘게 장수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계산해 보니 3.1 운동 때 3세였던 그가, 90세가 넘어 이 박물관을 설계한 셈이다.


종이 유물의 보존을 위해 5~6개월마다 전시품이 교체된다고 한다. 여름방학 즈음 전시 내용이 바뀌면 다시 오자고 아이와 약속했다. 출구에 관람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책갈피가 마련되어 있었다. 뒷면에는 이슬람 유물과 연관된 유물이 인쇄되어 있다. 이슬람 금 귀걸이-신라 금귀걸이, 이슬람 유리병-신라 유리잔, 아스트롤라베-앙부일구 등이다. 이슬람 관을 먼저 관람한 뒤, 이 책갈피들을 들고 다니며 박물관 곳곳에 숨겨진 연관 유물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듯하다.


처음 이슬람 전을 보러 가자고 했을 때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슬람? 흠, 난 이슬람은 별로야."

911 테러, 분쟁, 여성인권, 히잡... 아이가 생각하는 이슬람에 관한 키워드는 다음과 같았다. 세계문화관의 다른 관들이 지역명(인도, 동남아시아 등)을 쓰는 것과 달리, 이곳만 '종교'를 주제로 내건 것도 그만큼 종교가 그 문화권을 크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그런 혐오와 편견으로 이 찬란한 문화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에서 이슬람 문화와의 교류를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으니까. 예술과 문화의 눈으로 이슬람을 바라보는 열린 마음을 아이가 배웠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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