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시인, 이순신이 기억한 사람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관람기

by 사막여우

작은 도장들이 모여 만나는 이순신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자주 가는 곳이기에 우리는 늘 새로운 전시를 찾는다. 이번에는 특별전시관 2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를 보기로 했다.


박물관 로비를 들어서자마자 전시장 밖 체험공간이 눈에 띄었다. 특별전 입장권을 끊기 전이어서, 입장이 가능한지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특별전 관람 여부와 상관없이 체험이 가능하다며 엽서 한 장을 주셨다. ‘감각으로 만나는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주제로 특별전과 이어지는 체험공간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체험용 엽서에 다섯 개의 스탬프를 순서대로 찍어 그림을 완성하는 코너였다. 다색판화의 원리를 이용해 도장을 하나씩 찍을 때마다 색이 겹쳐지며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전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관람 후에는 멋진 기념품이 되는 영리한 기획이었다.



이순신 아카이브: 영웅을 넘어 인간으로

특별전시관 2관은 로비에서 왼쪽 깊숙한 곳에 있다. 실감영상관을 가는 곳과 동선이 비슷해서 처음 방문한 사람은 헤매곤 한다. 전시 포스터의 ‘우리들의 이순신’ 캘리그래피가 너무 멋있다. 전시장 곳곳에도 같은 필체를 볼 수 있었다.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인 이번 전시는 우리가 그동안 알던 ‘영웅 이순신’과는 조금 달랐다. 거북선과 해전을 중심으로 한 영웅적 서사보다는 인간 이순신의 면모에 초점을 맞춘 ‘이순신 아카이브’에 가까웠다. 이순신이 작성한 난중일기, 서신, 보고서 등 방대한 기록물로 그를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도입부는 실감영상공간이었다. U자형 대형 스크린 양쪽으로 파도가 밀려오고, "살아있는 한 나는 조선을 지킬 것이다"라는 이순신의 결연한 독백이 들려 비장미를 연출했다.

전시 초입에 동래읍성에서 출토된 인골이 전시되어 있었다. 낮은 칸막이를 두어 어린아이의 시선은 차단하고, 성인들만 내려볼 수 있게 연출한 배려가 돋보였다. 임진왜란 희생자의 두개골 세 개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탄환 구멍이 선명한 5살 미만 아이의 것도 있었다. 이순신의 위대한 승리 이면에 가려져 있던, 처참하게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복선처럼 다가왔다.



거북선,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

전시는 거북선의 탄생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용머리 없이 판옥선에 덮개만 씌운 초기 거북선의 추정 그림도 있었다. 판옥선은 갑판을 2층 구조로 만들어 하부에는 노를 젓는 노군을, 상부에는 화포와 군사를 배치한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이었다.

전시 영상은 거북선 탑승 인원과 그들의 역할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역할에 따라 해당 이미지 색이 바뀌어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다는 단순한 발상.
이 작은 혁신이 거북선의 탄생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바다를 지킨 거북선의 작지만 큰 한 걸음입니다.

영상 마지막에 나온 이 구절이 크게 와닿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 같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도전. 그 작은 차이가 역사를 바꾼 것이다.

또 다른 영상은 거북선 내부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점을 구현했다. 전투 중인 영상 속 포를 쏘면 관람 의자에 진동이 연동된다. 등받이 없는 단순한 의자인데도 진동 덕분에 현장에 있는 병사가 된 듯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칼을 든 시인, 그리고 타자의 시선

이순신의 장검이 전시되어 있다. 정말 '큰 칼 옆에 차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걸 과연 사람이 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칼이다.


비가 아주 많이 쏟아졌다.
모든 일행이 다 꽃비에 젖었다.
이날 밤, 바다의 달은 낮과 같이 밝았다.
출렁이는 물빛은 하얀 비단 같았다.


이순신은 장군의 이미지와 달리 놀라울 만큼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전쟁터에서 매일 일기를 쓰며 남긴 문장들은 아름답고 서정적이었다. 아이가 전쟁 중인데도 일기를 썼다고? 하며 깜짝 놀랐다. 평화로운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기 쓰는 것은 번거로운 일인데, 전장의 기록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양했다. 명나라 종군 화가의 그림을 일본이 모사한 병풍은 중국의 시선, 조선이라는 장소, 일본의 화풍이 뒤섞인 다국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특히 일본 나베시마 가문이 무공을 자랑하기 위해 남긴 ‘울산왜성전투도’는 묘한 재미를 주었다. 정면을 응시하는 말들의 표정과 병사들의 모습이 마치 현대 만화처럼 현실적이고 익살스러웠다. 선이 굵고 원색적인 화풍에서 훗날 만화 강국이 될 일본 미술의 특징이 엿보였다.

'울산왜성전투도'


세 가지 얼굴의 이순신

장우성의 '이순신 영정'
이상범의 '이순신 영정'

세 점의 이순신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공간도 인상적이었다. 중앙에는 우리가 익히 보아오던 표준 영정이, 왼쪽에는 한국 근대 동양화의 거장인 이상범의 작품이 있었다. 그는 조선의 마지막 화원인 안중식과 조석진의 제자이다. 이상범은 1932년 현충사 중건 당시 이광수의 소설 삽화와 구전 기록을 참고해 무인의 기상이 서린 이순신을 그려냈다. 표준 영정이 '선비 같은 용모'를 강조했다면, 이상범의 초상은 강인한 장군의 모습이었다.

엘리자베스 키스 '전 이순신 초상화'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오른쪽,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전 이순신 초상화'였다. '전(傳)'은 확실하진 않으나 그렇게 전해 내려 오는 것을 말한다. 제목에 이순신이라 명시되진 않았지만, 이상범의 그림과 닮은 이목구비, 배경에 놓인 수군조련도 병풍으로 이순신을 암시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살던 동생 부부를 만나러 일본에 왔다가 한국을 여행했던 영국 화가다. 그녀는 조선에 머무는 동안 많은 그림을 그렸다. 일본 우끼요에의 영향을 받은 다색목판화 기법이 특징인데, 컬러 사진이 많지 않던 시절에 키스의 목판화는 조선의 아름다운 색을 알려준다. 그녀는 관리, 선비, 무신부터 평범한 노인, 여성, 그리고 아이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그렸다. 이순신도 그렸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름 없는 이들을 기억하는 법

전시의 마지막은 출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 크레딧처럼 끊임없이 텍스트가 올라가는 영상이었다. 당대 사람들의 기록과 현대 시민들의 인터뷰가 지나간 뒤, 선조에게 올린 이순신의 보고서가 등장한다.


그것은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병사들의 명단이었다. 이순신은 유족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어 왕에게 올렸다. 놀라운 건 장수들의 이름만 있는 것아니라 사노비, 관노비, 절의 노비… 성씨조차 없어 ‘난손, 부피, 대복, 지남, 흔매, 업동’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천민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어느 배에 탔고, 무슨 임무를 맡았으며, 어떻게 죽거나 다쳤는지. 이순신은 그들 한 명 한 명을 동등한 ‘사람’으로 기록했다.


“엄마, 노비들은 왜 이름이 짧아?”

“그들은 성씨가 없었거든.”


원래라면 스쳐 지나갈 통로였지만, 아이와 나는 그곳을 십 분이 넘도록 떠나지 못했다.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관리자의 안내를 받고 벽 쪽으로 비켜서서, 수많은 이름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이는 "왜 이런 중요한 곳에 의자가 없냐"며 아쉬워했다.


전쟁에 끌려 나와 이름 없이 사라질 뻔했던 백성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이순신의 기록 앞에서 나는 거북선보다 더 큰 감명을 받았다. 단순한 명단일 뿐인 글자들이 이렇게 감동을 줄 줄은 몰랐다.


왜 전시 제목이 '영웅 이순신'이 아닌, '우리들의 이순신'인지 알 것 같다. 그는 단지 나라를 구한 영웅이 아니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우리'로 품었던 진정한 리더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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