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사 십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은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 9까지 연장운영을 한다. 특히 평일인 수요일 저녁은 관람객이 적어 고즈넉한 박물관에서 여유 있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간에 박물관을 찾아야 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8시, 경천사 십층석탑에서 미디어 파사드 '하늘 빛 탑'을 상영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대표적인 포토존인 경천사 십층석탑은 박물관 로비 '역사의 길'에 자리하고 있다. 탑 하나를 통째로 박물관 로비에 둔다는 파격적인 발상은 박물관 설립 계획 단계부터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 건축 공모 당시에도 그 조건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3층까지 뚫린 거대한 보이드(Void) 공간과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은, 본래 야외에 서 있던 탑의 위용을 실내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경천사 십층석탑은 고려시대의 탑이다. 원나라에 공녀로 갔다가 황후가 된 기황후의 최측근, 고용보가 고려의 미래와 기황후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 일반적으로 옛 탑들은 건립 연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이 탑은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훗날 이 탑을 본떠 만든 것이 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시대 원각사지 십층석탑이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탑 형태인 석가탑과 비교할 때, 경천사 십층석탑은 독특한 특징들을 지닌다.
첫째, 고려 말 원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아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둘째, 10층이다. 우리나라 탑은 주로 3층, 5층, 7층 등 홀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이 탑은 짝수인 10층탑이다.
셋째,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탑은 보통 화강석을 이용하는데, 단단한 화강암과 달리 이 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섬세한 조각이 가능했다.
아이가 "10층이 아니라 13층 같은데?"라고 말했다. 아이의 말처럼 아래 3개 층은 기단부에 해당하고, 실제 층수는 몸돌에 지붕이 있는 탑신부부터 센다. 경천사 십층석탑은 큰 지붕 3층, 작은 지붕 7층으로 이루어져 총 10층이 된다. 기단 3개층과 탑신의 3층까지는 평면이 십자형(亞)을 이루고, 그 위 7개 층은 정사각형이다.
이 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료는 돌이지만 마치 목조 건축물 같다. 지붕의 기와골과 난간, 그리고 지붕을 받치는 복잡한 구조물(공포)까지 돌을 깎아 나무처럼 섬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붕을 받치는 장식이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사이에도 있는데,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한다. 이는 기와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부처님의 집을 최대한 화려하고 웅장하게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다포 양식은 고려 말 원나라 영향으로 유입되어, 이후 조선 시대의 궁궐이나 사찰 등 권위 있는 건축물에 많이 쓰였다. 즉 이 석탑은 당시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귀한 자료가 된다.
개성 경천사에 있었던 이 탑은 1907년, 일본 궁내부 대신 다나카가 일본으로 무단 반출했다. 이후 조선 총독 데라우치의 반환 요구와 국제적인 여론에 의해 1918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데라우치가 탑을 돌려달라고 한 것은 선의가 아니었다. 그는 조선이 영원히 일본의 식민지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일본으로 가져가기보다 자신이 총독으로 있는 조선 땅에 두려고 했을 뿐이다. 데라우치는 한국의 많은 고서화와 고서를 일본으로 반출하여 '데라우치 문고'를 만든 장본인이가도 하다. 즉, 우리 문화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조선 또한 일본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아온 석탑은 조선 총독부가 있던 경복궁에 그대로 방치되었고, 남북이 분단되면서 영원히 개성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리석 재료 특성상 산성비에 취약했고, 해외로 반출되는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되었다. 결국 탑의 보존을 위해 실내 설치가 결정되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경천사 십층석탑은 우리 땅,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 자리하게 되었고, 이제는 박물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포토존이 되었다.
저녁 8시가 다가오자 관람객들은 석탑 앞에 줄을 맞춰 앉았다. 직원들은 관람객들의 동선을 최소화하도록 장내를 정리했다. 자율 관람이라고 하지만, 미디어 상영 시간 동안 박물관 전체 조명을 끄기 때문에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관람객의 이동을 자제시킨다.
탑 기단부에는 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유기 부조상이 새겨져 있다. 당나라 현장법사와 손오공 등이 인도에서 경전을 구해오는 험난한 여정을 중심으로 나한과 사자를 새겼다. 그 위 탑신에는 여러 장면의 법회와 부처를 조각했다. 미디어 파사드는 경천사 탑 조각에 담긴 이야기(손오공의 모험, 석가모니의 법회와 열반 등)를 12분 동안 상영한다.
탑의 정면에 영상을 쏘아 탑의 복잡한 형태와 굴곡을 따라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회백색의 다소 밋밋해 보이던 탑이 화려한 색감의 영상으로 옷을 입어, 정교한 건축구조와 내부의 조각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 다소 힘들긴 했지만 조용하고 깜깜한 박물관에서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밤 9시, 박물관을 나서며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박물관 입구의 거대한 프레임 사이로 남산타워 불빛이 반짝인다. 마치 거대한 액자 속에 서울의 밤 풍경이 담겨 있는 듯하다.
수백 년 전 고려의 탑과 21세기 서울 야경이 교차하는 순간. 낮 동안 인파로 북적이던 소란함이 사라지고 조용히 조명만 빛나는 밤의 풍경은 마치 나만 알고 있는 박물관의 숨겨진 모습을 몰래 보는 듯했다. 아이 역시 숱하게 와본 곳이지만 밤의 박물관은 처음이다. 아이에게 이번 수요일 밤은 익숙한 공간에서의 낯설고 특별한 모험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