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서화관 재개관 관람기

by 사막여우

2월 26일, 국립중앙박물관 서화관이 내부 수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2층 북쪽에 위치한 서화관은 외규장각 의궤, 서화, 불교회화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번 재정비는 서화실 위주로 진행된 듯하지만, 전시실이 서로 연결된 구조이기 때문에 전체 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규장각 의궤실: 왕의 서재

외규장각 의궤실은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공간이어서인지 기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약탈당했던 조선왕조 외규장각 의궤는 2011년에서야 대한민국으로 돌아왔고, 현재 서화관 내 전용 공간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의궤를 약탈해 간 프랑스 도서관 측에서는 이 책이 무엇인지조차 몰랐기에 중국이라는 분류 스티커를 붙여 두었고, 낡았다는 이유로 표지를 함부로 뜯어내 교체해 버렸다. 다행히 원래의 비단 표지가 일부 남아 있어 전시실 도입부에 전시해 두었다.

외규장각 의궤

흔히 의궤를 조선왕조실록과 혼동하기도 하지만, 둘의 성격은 다르다. 실록이 정치, 사회, 문화, 천재지변 등 국가 전반의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엮은 기록물이라면, 의궤는 조선 왕실의 주요 행사를 후세가 참고할 수 있도록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보고서다. 일반적인 의궤는 분산 보관을 위해 여러 부를 만들지만, 이곳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는 오직 국왕의 열람만을 위해 제작된 어람용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왕이 직접 보는 책인 만큼 당대 가장 뛰어난 서예가가 글씨를 쓰고 가장 훌륭한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보통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인원을 묘사하기 위해 판화를 활용하는 것과 달리, 어람용 의궤는 도화서 화원이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궤실은 왕의 서재를 모티브로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



서화 1실: 돌에 새긴 영원한 글씨, 금석문

의궤실을 지나면 본격적인 서화 전시가 시작된다. 서화는 글씨와 그림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서화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옛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화실의 시작을 여는 것은 옛글씨의 벽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모아 연출한 것이다. 이를 보면 비석의 글씨 그 자체가 이미 뛰어난 예술의 한 장르임을 깨닫게 된다. 옛사람들은 명필의 글씨를 돌에 새겨 영원히 보관하고자 했고, 후대 사람들은 종이에 먹으로 탑본을 떠내 비석의 글씨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글씨를 재창조해 냈다. 쇠나 돌에 새긴 글을 금석문이라고 하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금석학이라고 한다. 왜 우리 조성들이 그토록 비석의 글씨를 열심히 연구했는지 이해가 되는 공간이다.

그 앞에는 태자사 낭공대사비가 있다. 신라 말의 학자 최인연(최치원의 동생)이 글을 짓고, 당대 최고의 명필 김생이 쓴 행서를 모아 새긴 비석이다.

서화관의 바닥재가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박물관처럼 차가운 대리석이나 카펫 대신 나무 바닥이 주는 특유의 온기와 약간의 탄성이 전통 서화 작품들과 어우러져, 마치 한옥의 대청마루에 올라선 듯한 한국적인 정서를 느끼게 해 준다.



서화 2실: 일상이 예술이 되는 서화가의 방

이어지는 서화가의 방 전시 연출이 무척 우아했다. 서화관 전체의 낮은 조도와 대비되는 밝게 새하얀 공간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전통 창호를 연상케 하는 은은한 칸막이와 하얀 스크린을 설치하고 내부에는 선비의 책상과 문방사우를 정갈하게 두었다. 스크린 위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림자를 비추어, 마치 사랑방 창밖의 풍경을 보거나 한지에 그려진 묵죽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방 양쪽으로는 휴식공간와 전시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성품 의자 대신 대청마루를 조성해 관람객이 툇마루에 걸터앉듯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한 아이디어가 훌륭했다. 마루에 앉아 맞은편을 바라보면 선비들이 남긴 편지와 시, 인장과 전각 등의 전시가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편지와 시 쓰기는 옛사람들의 일상적인 글쓰기였습니다.
편지에는 이들이 다양한 감정이 솔직하게 묻어나고
시에서는 자신만의 내면세계가 드러납니다.
정성껏 써 내려간 편지와 시는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안내문구처럼, 일상이 곧 예술이었던 선비들의 풍류과 품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공간 디자인 전체가 옛 선비들의 검약한 정신과 소박한 미의식을 전달해 주고 있었다.


서화실 곳곳에 놓인 휴식용 의자조차 단순한 가구를 넘어 훌륭한 오브제가 되어 전시공간과 조화를 이룬다.



서화 3실: 겸재 정선, 아! 우리 강산이여!

서화관 재개관에 맞추어 겸재 정선의 전시가 시작되었다. 정선이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풍경을 똑같이 그려서가 아니라, 중국의 화풍인 북종화와 남종화를 융합해 우리 산천에 걸맞은 독차적인 화풍을 창안해 냈기 때문이다.


북종화는 험준한 바위산이 많은 북쪽 풍경을 직업 화가들이 가는 선으로 사실적이고 화려하게 그린 양식이다. 반면 남종화는 습윤한 남쪽 지방에서 관직을 물러난 문인들이 붓글씨를 쓰는 붓에 먹을 듬뿍 묻혀 번지듯 그려낸 소박하고 관념적인 회화다. 조선 후기 실학의 발달로 우리 땅을 직접 그리려다 보니, 우리 땅은 중국과 달리 험준한 돌산과 흙산, 강이 오밀조밀하게 섞여 있다. 정선은 우리의 풍경을 나타내기 위해 북종화와 남종화 양식을 한 화면에 동시에 담아냈다. 그 두 기법을 함께 그리는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이다. 북종화와 남종화는 천년 동안 전혀 다른 양식으로 분류되어 전해 내려온 것이다. 이 파격적인 시도가 바로 진경산수화의 시작이다.

개인소장품인 정선의 박연폭포가 전시되어 반갑고 신기했다. 정선의 박연폭포는 대작 두 점과 소품 한 점으로 총 세 점이 전해진다. 대작 한 장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이고 다른 두 점은 개인소장품인데, 이번 전시는 개인소장품의 대작이었다. 소장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전시를 위해 대여해 준 것으로 보인다. 간송 미술관 소장품은 가을 풍경이고 이 작품은 여름 풍경을 그린 것이다.


전시 설명과 함께 실제 박연폭포 사진을 나란히 배치한 점이 돋보였다. 박연폭포는 북한 개성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실물을 확인할 수 없다. 대신 폭포 사진과 정선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그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폭포의 상부에서 내려다본 시점, 중앙을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 그리고 하부에서 올려다본 시점 등 다양한 시점을 하나의 화면에 역동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대상을 과감히 변형하고 과장함으로써 실제보다 더 웅장한 회화미를 완성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겸재의 13폭짜리 금강산 그림, '신묘년 풍악도첩'도 만날 수 있다. 비교적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으로 노년의 대작들에 비해 원숙미가 덜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전시장에서 실제로 본 그림은 도판으로 볼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특히 작은 화면 속에 오밀조밀하게 그려 넣은 세부 묘사가 감탄을 자아냈는데, 그중에서도 동양 산수화에 등장하는 작고 간략한 인물 표현인 점경인물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웅천'의 한 부분이다. 좁은 절벽길을 걸어가는 인물과 모퉁이를 도는 나귀의 엉덩이만 묘사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옛날 금강산에는 절이 무척 많았는데, 이곳 고개를 올라 금강산의 절경을 내려다보면 당장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금강산에 살고 싶어 진다고 하여 단발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림 속 단발령과 금강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백이 시원하고 과감하다.


빛에 취약한 서화실의 종이 작품들은 보존을 위해 몇 달이 지나면 다른 작품으로 교체된다. 즉, 시즌마다 새로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국립중앙박물관을 자주 방문하는 이유이다.



전시 연결 통로에는 다감각으로 만나는 옛 그림이라는 체험코너가 있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돌과 옷감, 동물의 털 등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한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시각에만 의존하는 감상을 촉각으로 확장해 주는 이 기획은 시각 장애가 있는 관람객은 물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서화 4실: 채색화

1실은 금석문, 2,3실이 수묵화라면, 이어지는 4실은 화려한 채색화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일월오봉도를 비롯한 모란화, 호작도 같은 민화, 의궤도, 그리고 초상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표작은 이하응(흥선대원군) 초상화와 서직수 초상화다. 서직수 초상화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린 합작품이다.



불교회화

2층 서화관의 마지막은 불교회화실이다. 이 전시실의 가장 큰 특징은 3층 불교조각실과 수직으로 연결되는 공간 구조에 있다. 관람객은 전시실 내부 계단을 오르내리며 2층 불교 회화와 3층 불교 조각을 자연스럽게 연계하여 감상하게 된다. 글과 그림 위주의 2층 평면 전시와 조각 및 공예 중심의 3층 입체 전시를 불교예술이라는 공통분모로 엮어낸 공간 연출 아이디어가 탁월하다.


또한 층과 층 사이를 뚫은 보이드 공간 덕분에 층고가 높은 벽면 전시 공간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이곳은 10m에 달하는 거대한 괘불을 걸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곳으로, 평소에는 미디어아트로 그 장엄함을 대신하고 있다. 올해 또 대형 불화 전시가 예정되어 있어 곧 이 거대한 벽면에 실제 괘불이 걸릴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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