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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Feb 04. 2024

[07] 베네치아 곤돌라

여행 여섯 번째 날

2023년 10월 4일 수요일


이탈리아에서 보내는 첫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어제와 달리 날이 흐리다.


스칼치 다리에서 내려다본 대운하는 18세기 카날레토의 풍경화 같았다. 그랜드 투어를 통해 베네치아를 방문했던 영국 귀족들은 기념품으로 카날레토의 베네치아 풍경화를 꼭 구매했다고 한다. 현대 건물인 산타루치아역만 제외하면 그림 속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 경의롭다. 동시대 우리의 진경산수화 속 한강도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어떠했을까.

카날레토'The Grand canal with S.Simeone Piccolo'


우리가 머문 에어비앤비는 호스트 대신 숙소 앞 '바 올림피아' 직원이 숙소 관리를 한다. 이탈리아에서 '바(Bar)'는 커피와 빵을 파는 곳으로 간단하게 식사하기 좋다.  올림피아 들러 커피를 다. 투숙객 서비스인지 돈을 받지 않았다.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가 마트에서 산 빵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를 마셨어야 했을까. 아메리카노가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





베네치아에서는 특별히 뭔가 하기보다 골목을 거닐며 느긋하게 보내기로 했다.


'아쿠아 알타'라는 중고 서점에 갔다. 김초엽 단편 소설 '행성어 서점'에 전 우주 언어를 자동 통역해 주는 기술이 탑재된 미래 사회에서 어떤 기술로도 해석하지 못하는 책을 파는 서점이 등장한다. 여행자에게 낯선 외국어로 된 서점에서 이국적인 경험을 선사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나 역시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읽지 못하는 책이 가득 찬 서점에서 온전한 이방인이 되어보는 경험을 좋아한다.


'아쿠아 알타'는 이탈리아어로 만조를 뜻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베네치아가 정기적으로 잠기는 현상을 말한다. 이 서점은 아쿠아 알타 때 침수된 책을 쌓아 만든 거대한 벽과 계단 포토존이 있다.

작은 모니터 하나가 아쿠아 알타 때 침수된 서점 영상을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곤돌라 무료 포토존이 있다.

서점 한구석에 수로 방향으로 문이 열려있고 사용하지 않는 곤돌라 하나가 묶여 있다. 책 계단 포토존은 줄이 길었지만 이곳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없었다. 우리 가족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계속 걸어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유해의 발견'을 비롯한 세 연작의 주제가 된 곳이다. 사복음서 성인 중 한 명인 성 마르코(마가)의 유해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다.

틴토레토 '성 마르코 유해의 발견'

광장은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골목길을 다니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단체 관광객은 여기에 있는 듯했다. 나폴레옹은 이곳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노점상과 관광객으로 가득 차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지는 모르겠다.


국제 무역이 활발했던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커피가 들어온 곳이다. 1720년에 오픈한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이 이 광장에 있다. 카사노바가 자주 찾았다는 이 카페는 베네치아의 상류층이 모이는 장소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산 마르코 광장에는 30개가 넘는 카페가 있었다고 한다.


광장 한쪽에는 마르코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 동상이 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자 머리 위에 앉은 비둘기까지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인다.


산 마르코 광장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한때 지중해를 지배했던 해상 강국 베네치아의 면모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석호 안에 거주지를 마련한 베네치아는 서서히 해상 무역을 통해 번영했다. 특히 십자군 전쟁 동안 해상 공화국들은 십자군에 대한 보급과 수송을 담당하면서 막대한 상업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베네치아는 가장 부유한 국가로 성장했다.


낡은 골목길과 대조되는 화려한 건축물은 베네치아의 과거 영광을 보여준다.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상점이 늘어선 아케이드는 베네치아의 번영과 문화를 상징하며, 화려한 색채의 모자이크 장식과 정교한 조각, 아치형 구조는 베네치아만의 독특한 예술적 감각을 드러낸다.


아이의 버킷리스트 곤돌라를 타기 위해 다시 리알토 다리로 갔다. 곤돌라 탑승장은 베네치아 어디든 많지만 리알토 다리 아래에서 타는 것이 가장 구경하기 좋다고 한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곤돌리에들이 식사하러 갔는지 빈 곤돌라만 있어 한참을 기다렸다.

 

곤돌라는 20~30분에 80유로로 꽤 비싸기 때문에 혼자 여행했을 때는 타지 않았다. 가족 여행이라면 탈 만하다. 오늘날 곤돌리에는 한 손에는 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노래를 부르진 않았지만 좁은 수로를 다니며 건물들을 설명해 주셨다.

수로를 지나며 보는 풍경은 걸어 다니면서 보는 풍경과 또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오전에 흐렸던 날씨는 마침 곤돌라를 타자마자 맑게 개었다. 탑승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웠다.


곤돌라 투어가 끝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근처 식당 중 구글 평점이 적당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토마토 파스타, 까르보나라, 마르게리타 피자를 주문했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까르보나라는 크림 파스타에 가깝지만, 이탈리아 정통 까르보나라는 계란을 주 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남편이 호기심에 몇 번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도대체 계란으로 어떻게 파스타 맛을 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 식당에서 나온 까르보나라는 색깔부터 계란 노른자의 밝은 노란색이었다. 진한 계란 맛과 고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정통 까르보나라 맛이라며 감탄했다. 아이도 크림 파스타보다 훨씬 더 맛있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다시 나와 장을 보러 갔다. 우연히 산 베네치아 귤이 너무 맛있어서 이탈리아에 있는 내내 매일 귤을 사 먹었다. 당도가 엄청 높은 것이 한라봉 맛이다.




숙소 창밖으로 성당 종탑이 보인다. 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이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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